영화 ‘007 어나더데이’에서 북극을 가로지르던 스포츠카는 어떤 메이커일까?
날렵한 근육질에 놀라운 스피드, 그리고 첨단장비와 고전적인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던 제임스본드의 스포츠카는 바로 영국 혈통의 ‘애스턴마틴’이다. 특히 애스턴마틴은 지금까지 007시리즈에 가장 많은 차량을 등장시켰으며, 고성능 슈퍼카 인식보다 ‘본드카’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애스턴마틴은 사실 업계관계자들 사이에서 롤스로이스, 벤틀리와 함께 영국 3대 럭셔리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워낙 고가의 차량을 소량생산 하다보니 설립 이후로 끊임없는 재정난에 시달려 왔다.
이 회사는 초창기 영국 트랙터 재벌에 매각됐다. 포드사가 경영권을 사들인 후 지난 2007년에 다시 영국-쿠웨이트 합작투자회사에 다시 경영권이 매각된 상태다.
- 자동차 경주 대회 통해 명성 쌓아
애스턴마틴은 1912년 라이오넬 마틴과 로버트 뱀포드가 ‘싱어(Singer)’사의 자동차를 팔기 위해 ‘뱀포드&마틴’이란 회사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1915년 첫 모델을 발표한 뱀포드&마틴사는 설립자였던 마틴의 이름과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애스턴 힐 레이스의 이름을 합쳐 ‘애스턴마틴’이란 이름의 회사를 설립했다.
하지만 곧바로 터진 세계 1차 대전으로 인해 마티과 뱀포드가 군에 입대하면서 본격적인 생산에는 나서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1920년에는 공동설립자였던 뱀포드가 다시 회사를 떠나면서 애스턴마틴의 운영은 마틴이 혼자 맡게 됐다.
여러 대의 고성능 차량을 만들어 유럽 그랑프리를 출전하던 애스턴마틴은 1922년 DOHC 16벨브 엔진을 얹은 차를 영국 브룩랜즈 경주에 출전시켜 우승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성능을 중요시했던 탓에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없었던 뱀포드&마틴사는 결국 1924년 파산하고 만다. 영국 명문가였던 찬우드(Charnwood)가문이 회사를 인수했지만, 이듬해 다시 파산했고, 1926년에는 설립자였던 마틴마저 회사를 떠나면서 결국 회사는 문을 닫았다.
- 영국 명문가들의 지원에 명맥 이어가
사라질 뻔한 애스턴마틴이 되살린 이들은 찬우드 가문이었다. 설립자였던 마틴마저 손을 놨지만, 찬우드가문과 투자자들은 애스턴마틴 모터스(당시까지는 뱀포드&마틴사였다)을 새로 설립하고, 엔진회사인 렉웍&베르텔리(Renwick & Bertelli)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차량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애스턴마틴은 1929년 ‘인터내셔날(International)’이란 모델을 선보였다. 이 차량은 뛰어난 주행성능으로 2차대전 이전까지 명성을 쌓았고, 뒤이어 르망(Le Mans)과 울스터(Ulster)를 출시하면서 스포츠카 역사에 뿌리를 내렸다.
스포츠카 업계에서 높은 명성을 쌓아가던 애스턴마틴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재정난이었다. 배기량에 비해 가격이 너무 높았고, 차량 역시 수작업으로 만들면서 대량생산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 설립초기 1914년부터 1940년까지 만들어진 애스턴마틴은 617대에 불과했다.
찬우드 가문의 도움으로 20년대의 어려움을 헤쳐왔던 애스턴마틴은 30년대 들어 다시 재정난을 겪자 1933년 영국의 귀족인 아더 서덜랜드 경이 인수하면서 안정을 찾는다. 이후 경주용 차량보다 승용차에 집중하면서 수익에도 신경을 썼다.
이런 가운데 애스턴마틴은 1939년 처음으로 앞 독립 서스펜션과 전기식 변속기를 갖춘 ‘아톰(Atom)’을 선보인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양산을 하지 못했다.
- ‘DB’시리즈로 전성기 누린 애스터마틴
2차대전 이후 파산을 향해 달려가던 애스턴마틴은 트랙터와 농기계 등을 만들어 성공한 사업가 데이빗 브라운을 새주인으로 맞이한다. 브라운은 애스턴마틴과 함께 라곤다(Lagonda)를 인수해 애스턴마틴 라곤다를 설립했다.
이후 애스턴마틴은 1948년 벨기에 스파 24시간 경주에 출전한다. 대회에 참가했던 두 대의 차량 중 한 대가 우승을 차지했는데, 바로 이 차가 DB시리즈(데이빗 브라운의 이니셜) DB1이었다. 애스턴마틴의 질주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애스턴마틴은 이후 경주차 설계를 바탕으로 시판차를 선보였는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런 가운데 1953년 DB2의 뒷좌석을 보강한 DB2/4를 선보였는데, 이 차량에 처음으로 ‘빈티지’란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1954년에는 코치빌덜인 틱포드를 데이빗 브라운이 인수했다. 이 인수를 통해 애스턴마틴은 직접 보디 제작을 하게 됐고, 1958년 DB4을 선보였다. DB4의 기본 프레임은 이후 2000년까지 사용됐다.
잇달아 나온 DB5는 1963년 007시리즈 ‘골드핑거’에 나와 유명해졌고, 1965년에는 마지막 DB시리즈인 DB6이 등장했다. 이후 1967년부터는 DBS가 등장했다.
- 계속되는 재정압박에 주인 계속 바뀌어
2차 대전 이후부터 70년까지 애스턴마틴은 전성기를 누렸지만, 재정문제는 여전히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다. 결국 데이빗 브라운은 1971년 회사를 내놓았고, 이듬해에 디벱롭먼츠(Devolopments Co.)가 새주인이 됐다.
이때부터 애스턴마틴은 DB시리즈 대신 V8을 시장에 내놓았다. 또한 고성능 모델에만 붙이던 빈티지란 전통도 깨졌다.
잇달아 불어 닥친 석유파동과 미국의 배기가스 규제는 판매감소로 이어지면서 애스턴마틴은 결국 1974년 생산을 중단한다. 하지만 1975년 두명의 미국인이 애스턴마틴&라곤다를 인수하면서 생산은 재개됐다.
애스턴마틴은 1987년 포드에 인수될 때까지 여러명의 주인을 거치게 된다. 1980년 페이스 페트롤륨에 인수됐다가 83년에는 미국의 오토모티브 인베스트먼트가 새주인이 됐고, 이듬해인 84년 10월에는 그리스 해운재벌인 리바노스 그룹이 지분 75%를 인수하면서 새로운 주인이 됐다.
하지만 1987년 럭셔리 브랜드로 확장을 계획하던 포드가 리바노스그룹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애스턴마틴은 포드자동차그룹의 식구가 됐다.
포드그룹 산하에서 재규어, 랜드로버 등과 함께 PAG그룹에 속해있던 애스턴마틴은 2005년 한해에만 4,500대를 파는 등 중흥기를 누렸지만, 세계적인 자동차시장 불황으로 인해 지난 2008년 결국 또다시 영국-쿠웨이트 합작 투자회사로 경영권이 넘어간 상태다.
그러나 애스턴마틴은 포드그룹에서 생활하는 동안 다시 DB시리즈를 부활시키면서 스포츠명차의 반열을 단단히 했고, 최근에는 V8 뱅퀴시 모델을 통해 소형차 시장에도 발을 내딛는 등 알짜배기 회사로 거듭나 명차메이커의 위상을 단단히 굳혀가고 있다.
snikerse@gmail.com
'CAR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MASERATI] 세단처럼 편안해도 페라리보다 빠른 伊 최고 슈퍼카!! (0) | 2009.07.06 |
---|---|
[Alfa Romeo] 페라리조차 능가했던 밀라노 출신의 스포츠세단 (0) | 2009.07.06 |
[Bently] 영국 혈통 빈티지카의 대표주자, 세계 3대 명차로 올라서다! (0) | 2009.06.29 |
[Rolls Royce] 럭셔리 브랜드의 지존으로 군림하는 영국왕실 의전차량 (0) | 2009.06.29 |
[Bugatti] 영국왕실을 위한 최고의 사치품...예술적인 럭셔리카의 지존 (0) | 2009.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