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3대 명차, 아우디’.
자동차왕국 독일에서 벤츠, BMW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앞서 밝힌 아우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우디를 벤츠나 BMW의 후발주자로 여기고 있지만, 이것은 오해다. 아우디는 110년의 역사를 지낸 엄청나게 오래된 브랜드다. 그럼에도 아우디가 벤츠·BMW의 후배로 여겨지는 것은 일찌감치 성공가도를 달렸던 경쟁업체들과는 달리 70년대에 들어서야 명차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긴 역사를 가졌지만, 가장 늦게 성공한 아우디. ‘진보를 위한 기술’을 슬로건으로 세계자동차시장에 혁신적인 기술을 전파한 아우디의 역사를 파헤쳐봤다.

- ‘회렌→아우디’ 창업주의 이름이 사명으로

올해 110년이 되는 아우디는 독일의 대표적인 자동차업체다. 자동차 역사의 초창기였던 1899년 아우그스트 호르히(1868~1851)가 자신의 이름을 딴 ‘호르히 자동차’를 설립된 이래 자동차기술 발전의 선두주자로 여러 가지 혁신적인 자동차기술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호르히는 원래 벤츠의 직원이었다. 벤츠에서 자동차를 만들었던 호르히는 이후 자신의 회사를 설립했다. 그곳에서 자신을 이름을 붙인 ‘호르히4’라는 차를 완성시킨다. 이차가 바로 세계 최초의 후륜방식 자동차다.
호르히4는 당시의 차량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다. 엔진을 뒤에 놓고 벨트와 체인으로 차룰 움직이던 것과 달리 엔진을 앞으로 이동시킨 호르히는 ‘샤프트’를 통해 뒷바퀴에 구동을 전달하는 현대의 후륜방식을 채택한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1904년 레이싱경기에 출전해 벤츠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함으로써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뛰어난 엔지니어였던 호르히는 경영에는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레이싱에 집착하면서 회사의 주주들과 의견충돌이 빈번하게 발생했던 것. 결국 호르히자동차의 주주들은 설립자였던 호르히 박사를 회사에서 물러나게 했다.
그러나 여기서 그가 자동차개발을 멈췄다면 아우디의 역사는 시작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회사를 나온 그는 다시 자동차 회사를 설립한다. 호르히란 이름은 이미 이전 회사에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발음이 비슷한 ‘회렌’이란 이름을 사명을 정했다.
회렌은 ‘듣다’라는 뜻으로, 라틴어로는 ‘아우디’(영어로는 오디어)가 된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프리미엄세단 ‘아우디’가 탄생한 것이다.

- 아우디를 만들다

아우디가 처음 만든 차는 1910년 선보인 A타입이다. 하지만 정작 ‘아우디’란 이름으로 공식 생산된 차는 같은 해 만든 B10/28이었다. 직렬 4기통 2612cc 28마력 엔진을 가진 이 차량은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레이싱 경주에 출전해 호르히 박사가 직접 몰고 우승을 차지했다.
다음해 선보인 C형 역시 같은 경기에서 우승했다. 이후 아우디에게는 ‘알펜저거(알프스의 승자·오스트리아 레이싱 경주 이름)라는 별명을 얻었다.
각종 레이싱경기에서 우승하며 명성을 쌓은 아우디였지만, 히틀러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수난이 시작됐다. 히틀러가 ‘국민차 계획’을 발표하면서 자동차 판매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결국 경영난에 시달리던 아우디는 다른 3개의 회사와 합병을 선택하게 된다. 반더리(Wanderer) 호르히(Horch·호르히박사가 처음 설립했던 회사)·데카베(DKW)와 함께 연합전선을 구축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우디의 고유 상징인 엠블럼이 탄생하게 된다. 아우디의 엠블럼인 4개의 동그라미는 바로 이때 당시 합병한 4개사를 상징한다.
4개사의 회사는 아우디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1933년 발표된 첫 번째 모델은 데카베의 앞바퀴 굴림방식, 반더러의 엔진, 호르히의 차제 등 여러 회사의 강점을 한데 모아 만든 ‘아우디 프론토’를 선보이면서 본격적인 아우디의 역사를 열었다.

- 합병의 역사 속에 프리미엄세단으로 거듭나

이후 아우디는 자동차역사의 새로운 표준으로 거듭나게 된다. 세계최초로 시도한 전륜구동의 성공에 이어 중앙에 위치했던 핸들을 좌측으로 보냈으며, 8기통 엔진을 선보이게 된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던 아우디는 항상 재정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설립자인 호르히 박사가 경영에는 수완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아우디는 BMW를 제외한 독일 내의 거의 모든 자동차 회사에 팔려다니는 신세로 전락했다.
1960년대 폭스바겐의 자회사로 예편된 아우디는 이곳에서 레이싱명가가 아닌 프리미엄 세단으로의 명성을 쌓기 시작한다. 대중적인 느낌이 강했던 폭스바겐을 대신해 상류층 공략을 위한 자동차 개발에 집중하면서 큰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특히 포르쉐 가문의 외손자인 피에히박사가 포르쉐가문과의 불화를 겪자 재빨리 스카웃하면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피에히박사가 아우디의 상징이 된 ‘풀타임 4WD’인 ‘콰트로’를 개발하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콰트로 시스템은 본래 1978년 독일군용 오프로드 차량을 개발하라는 주문을 받고 만들었는데, 가벼우면서도 차량을 작고 효율이 뛰어나 곧장 스포츠쿠페에 적용됐다.
콰트로를 일반 4WD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아우디의 이 같은 행동에 대해 비웃었지만, 결과적으로 아우디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어 1994년에는 아우디80, 아우디100, 아우디V8로 분류됐던 라인업을 각가 A4, A6, A8로 변경하면서 지금의 패밀리룩을 적용하기 시작합니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벤츠와 BMW가 역사와 전통에서 각각 명성을 쌓고 글로벌메이커로 군림하고 있지만, 아우디 역시 이들보다 못한 점이 없다”면서 “아우디의 기술력과 곡선의 미학은 아직까지 어떤 회사도 흉내내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snikers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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