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Dosa;lza] “작지만 강하다!”
대형차가 득세인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유독 중형세단에서 강점을 보이는 자동차메이커가 있다. 중형세단이 주력이면서도 세계적 명차인 벤츠와 비교되는 독일의 자동차 브랜드. 바로 BMW다.
항공기엔진회사에서 출발했던 BMW는 어쩌면 벤츠의 하청업체가 됐을지도 모르는 업체였다. 창업 초기 항공기엔진을 만들다 오토바이를 거쳐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한BMW가 가장 벌였던 사업이 바로 벤츠에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벤츠의 부품회사에서 출발해 지금은 벤츠의 아성을 위협할 정도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기업. 자동차왕국 독일에서조차 ‘마에스트로(장인) 기업’이라고 불릴 정도로 높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BMW의 그림자를 쫓아봤다.
- 항공기엔진에서 모터사이클로 눈을 돌리다.
BMW는 1916년 독일 바이에른주 뭔헨에서 태어났다. 당시 항공기엔진을 만들던 칼라프, 막스 프라츠, 카라프와 구스타프 오토가 합작해 세운 바이에른모터제작회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BMW의 엠블럼은 당시 항공기의 프로펠러를 형상화한 것인데, 이것은 설립초기 BMW가 항공기엔진을 만들던 회사였기 때문이다. 프로펠러 중간에 들어간 파란색과 흰색은 본사가 있는 바이에른의 상장으로 알려져 있다.
1년 뒤에 바이에른모터제작사는 바이에리쉐 모토렌 베르케(Bayerishe Motoren Werke)라는 설비회사를 인수했다. 바로 지금의 BMW로 불리는 회사가 이곳이다.
BMW는 당시 자동차엔진이 아닌 항공기 엔진을 만들고 있었다. 이들이 만든 엔진은 1차대전 당시 독일 공군기에 사용됐다.
그러나 BMW는 세계 1차대전이 끝나면서 큰 시련에 직면하게 된다. 패전국이 되면서 베르사유조약에 의거, 항공기엔진을 비롯한 무기에 사용될 수 있는 기계제작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불황으로 자동차가 줄고, 모터사이클 붐이 일고 있었다. BMW는 이를 재빨리 파악하고, 궁여지책으로 모터사이클을 생산하게 됐고,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항공기엔진을 독자적으로 만들 정도로 높은 기술을 가졌던 덕에 모터사이클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갖게 된 BMW는 당시의 레이싱 대회를 석권하면서 미국 할리데이비슨에 버금가는 유럽의 모타사이클 명가로 자립잡게 된다. 특히 1997년 공개된 크루저는 사상 최고의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 3시리즈가 세상에 나오다!
모터사이클 분야를 평정한 BMW는 1928년 자동차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영국의 오스틴세븐의 라이센스 업체였던 딕시(Dixi)사를 인수한 것. BMW는 딕시를 통해 회사 최초의 차량인 BMW 3/15를 선보였다.
뒤이어 BMW의 독자적인 모델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1932년 827cc의 3/20을 선보인데 이어 1933년에는 319를 내놓았다. 바로 BMW의 첫 경주차로 활약한 차가 바로 이 모델이다.
같은 해 BMW는 베를린 모터쇼에서 6기통 차량을 선보인다. 바로 303모델이다. 이 차량이 중요한 것은 BMW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돼지코 그릴이 최초로 적용된 차량이기 때문이다. 돼지코 그릴은 1931년 일(Ihle) 형제가 처음 디자인했는데, 여러 차례 변형을 거쳐 현재까지 BMW에서 생산되는 모든 차량에서 사용되고 있다.
303모델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이 차가 BMW의 주력 차종 중 하나인 3시리즈의 원형이 됐기 때문이다. BMW는 벤츠보다 작은 엔진으로 벤츠보다 더 빠르게 달리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었는데, 이 꿈은 303의 업그레이드 모델을 통해 이뤄지게 됐다.
- 패전 이후 다시 찾아온 위기
BMW는 다시 2차대전의 독일 패전과 함께 역사에서 사라져 버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해체위기까지 맞았지만 모터사이클로 위기를 진화했다.
1951년, 전후 첫 모델로 6기통 엔진을 얹은 501을 발표했다. 이차는 세계 제일의 6기통 엔진을 달았으며, 전쟁 전 클래식 모델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닮았다. 최고 속도는 무려 시속 135km 나 되었으며, 비슷한 시기에 나온 벤츠 300과 쌍벽을 이룰 만한 대형차로, 패전으로 고통 받던 서독 국민에게 자동차 왕국이라는 자존심을 세워 주었다.
마침 평화무드가 정착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대형차 붐이 일기 시작하였다. 이에 맞춰 1956년 V8 엔진의 대형 로드스터 502, 503, 507을 차례로 선보였다.
이런 성공에도 불구하고 BMW의 경영난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다. 나중에는 경쟁사인 벤츠와의 합병설까지 나돌았다.
1959년 헤르베르트 콴트(Herbert Quandt)에 의해 BMW는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다시 한번 아우토반의 명성을 얻기 위해 1962년 1500을 내놓았다. 이때부터 BMW 는 본격적인 자동차 메이커로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 곧 이어 나온 1600TI, 1802, 카브리올레 버전인 2002모델도 크게 성공하면서 BMW는 완벽하고 고성능인 승용차의 메이커로 이미지를 굳혔다.
- 올림픽을 통해 알린 5시리즈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BMW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72년 뭔헨에서 올림픽이 개최됐기 때문이다. BMW는 올림픽을 통해 숨겨뒀던 5시리즈를 공개, 세계시장에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가 BMW로서는 글로벌 메이커로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BMW의 5시리즈는 BMW라인업에서 중추적 구실을 하고 있다. 날렵하고 멋진 디자인에 파워 넘치는 힘을 겸비한 5시리즈는 곧 대중적인 패밀리카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으며, 라이벌인 벤츠의 아성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때 BMW의 전략은 ‘보다 낮은 가격으로 높은 품질과 고성능을 소비자에게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뒤이어 BMW는 스포티 세단3시리즈와 어퍼미들 설룬 5시리즈, 그리고 대형 프레스티지카 7시리즈, 고급 스포츠 쿠페인 8시리즈로 잇달아 공개하면 프리미엄 자동차메이커로서의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특히 3시리즈는 BMW라인업 중 가장 기본이 되는 모델로 벤츠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부랴부랴 소형자 190시리즈를 내놓을 정도로 위협적인 모델이었다. 뛰어난 고속 주행 안정성과 경제성으로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BMW는 현재 세계 120여개국에서 16개의 생산공장과 1천여개의 딜러를 운영하고 있다. 92년에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스파르탄버그에 현지 공장을 설립해 3시리즈와 Z3를 생산하고 있다. Z3는 95년 미국을 비롯한 100여개국에 팔리기 시작했고 1997년 10월 29일에는 10만번째 모델을 생산했다.
- 롤스로이스 인수로 명차의 반열에 오르다
1994년 베른트 피세츠리더 회장이 취임한 이후 해외시장 개척에 더욱 힘을 쏟고 있는 BMW는 같은 해 영국의 로버를 인수하면서 생산규모가 100만대를 넘어섰고 그동안 BMW에 없었던 SUV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인수 6년째 되던 2000년 로버와 랜드로버를 다시 벤처 캐피탈회사와 포드에 각각 넘김으로써 BMW와 미니, 롤즈로이스 브랜드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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