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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story

[Toyota] 한국전쟁 없었다면 일본 '렉서스' 신화도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차를 파는 회사는 어디일까?

폭스바겐, GM 등 글로벌 메이커들이 정답일 것 같지만, 실상은 일본의 도요타다. 도요타는 지난 2007년 951만대를 생산해 세계 최고의 자동차왕국으로 불렸던 미국의 GM(2007년 917만대 생산)을 추월했다.

여기에 도요타는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원가절감을 통해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란 타이틀을 수성 중이다. 자동차업계의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하이브리드 분야에서도 1위를 질주하는 등 기술력과 품질, 원가경쟁력 등에서 ‘최고’란 찬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도요타에게도 어려웠던 시절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면서 도산위기에까지 몰리며 오너일가였던 키이치로 사장이 경영에 물러난 적도 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란 호재 속에서 부활하며, 오늘날의 ‘글로벌 도요타’ 시대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 최고의 자동차브랜드 도요타를 알아봤다.

- 직물회사 내 부서에서 출발한 도요타자동차

도요타는 1926년 직물기계 공장의 한 부서로 출발했다. 창업자인 도요타 사키치가 자신이 운영하고 있던 도요타자동직기제작소 내에 자동차부를 신설하면서 자동차제작에 나선 것.

이후 10년이 지나고 나서야 최초의 도요타자동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도요타 AA형’이 주인공이다. 이 과정에서 도요타는 사명을 ‘도요타자동차공업’에서 현재의 ‘도요타’로 변경했다.

도요타의 첫 결과물인 AA형은 사실 도요타 가문의 2세인 도요타 키이치로가 만든 차량이다. 그는 도요타자동차공업을 설립하면서 “일본인의 머리와 손으로 일본의 대중차를 만들겠다”는 신념을 갖고 차량 개발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AA형을 결과물로 내놓은 키이치로는 이후 현재의 도요타시에 대형 자동차공장을 세운 뒤 본격적으로 자동차제작에 나서기 시작했다. 1938년부터 42년까지 GM의 시보레 트럽을 조립 생산했으며, 2차 대전 당시에는 군용 트럭을 만들었다.

그러나 도요타자동차공업은 1945년 일본이 2차대전에서 패전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고, 1950년에는 판매부진과 경영악화로 도산위기를 맞기도 했다.

결국 노조가 파업하면서 창업자였던 키이치로는 사장직에서 물러났고, 회사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도요타 역시 제작법인과 판매법인이 별도로 분리됐다. 도요타 역사상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다.

- 한국전쟁으로 기사회생 후 독특한 경영관리로 명성 얻어

도요타는 그러나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인해 단숨에 재기에 성공했다. 한국전쟁에 미국이 참전하면서 한국에서 군용트럭을 조달하기로 한 것. 이미 2차 대전 당시에 군용트럭을 만들었고, 미국의 시보레 트럭을 조립생산했던 도요타는 이를 계기로 단숨에 일본의 대표 자동차회사로 성장하게 됐다.

군용트럭으로 재미를 본 도요타는 1955년부터 독자적인 자동차 생산에 나서게 된다. 국내에 수입돼 생산되기도 했던 크라운과 코로나 등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이 모델들은 일본은 물론 국내에도 수입돼 큰 인기를 누렸다.

70년대에 접어들면서 세계 자동차 업계에 위기가 찾아왔다. 석유파동이란 복병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요타에게 석유파동은 또 하나의 기회였다. 66년부터 생산했던 코롤라가 소비자만족도 조사에서 ‘가장 좋은 소형차’란 평가를 받으면서 미국 자동차 시장을 장악해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후 히노와 다이하츠 등 소형차 업체들을 계열사로 두게 되면서 도요타 제국의 기초를 닦기 시작했다.

한편 도요타는 이 시기에 그들만의 독특한 생산방식인 ‘JIT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재고관리 기법 중 하나인 JIT시스템은 ‘Just In Time’의 약자로, 부품수요가 발생하면 시간대별로 체크해 부품을 공급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가이젠’이라고도 통칭되는 이 시스템은 이후 전 세계 자동차회사들의 자재관리시스템의 기준이 됐다.

- ‘렉서스’ 차별화 전략 통해 세계1위의 자동차왕국 건설

도요타의 전성기는 80년대에 들어오면서 시작됐다. 1950년 이후 분리 운영해오던 판매법인을 합병해 현재의 ‘도요타자동차주식회사’가 되면서, 세계적인 히트모델인 캠리 생산에 나섰기 때문이다.

1983년부터 생산된 캠리는 1988년 미국 현지 생산을 거쳐 1993년에는 ‘미국 최고의 차’로 선정됐다. 현재 6세대까지 나온 캠리는 높은 품질에도 저렴한 가격으로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월등한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캠리의 성공은 한편으론 도요타에게 또다른 숙제를 안겨줬다. 낮은 가격의 높은 품질의 차란 이미지 전략에는 좋았으나, ‘값싼 일본차’란 편견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이에 도요타는 1990년대 렉서스(Lexus)란 브랜드를 런칭하며 고급차 시장에 진출한다. 당시 도요타는 렉서스가 도요타의 프리미엄 브랜드란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전혀 다른 회사인 것처럼 등장시켰다. 렉서스는 이런 차별화된 전략과 화려한 디자인으로 인해 BMW, 벤츠 같은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현재 도요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차를 파는 글로벌 메이커의 자리를 굳건하고 지키고 있다. 특히 도요타-렉서스-다이하츠로 이어지는 일반-프리미엄-소형 차종의 완벽한 판매라인과 브랜드전략은 세계 자동차메이커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러나 미국 신용경색 이후 도요타에는 비상등이 커진 상태. 차량 수요가 줄어들면서 판매에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도요타는 다시 허리띠를 줄라매며 ‘가이젠’을 외치고 있다.

도산 이후 법정관리를 거치며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끊임없는 품질관리와 자기노력을 통해 세계 최고의 자동차메이커가 된 도요타. 자동차전문가들은 이런 도요타의 과거가 바로 ‘글로벌 도요타’의 원동력이라고 보고 있다.


snikers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