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을 대표하는 자동차 메이커, ‘스코다(Scoda)’를 아시나요?
체코의 대표적인 자동차 메이커인 스코다는 사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메이커다.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소련과 미국이라는 냉정체계 속에서 교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만큼은 세계 어떤 자동차 회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스코다의 공식역사만 80여년. 여기에 스코다의 전신 L&K의 역사까지 포함하면 한세기를 넘는 장구한 역사를 가진 자동차 회사다.
이런 스코다가 서유럽과 미국 등 자유진영 국가들에게 알려지지 시작한 것은 1992년부터. 독일 최대 자동차그룹인 폴크스바겐이 스코다를 인수했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체코에 현지공장을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년역사를 자랑하며 글로벌 자동차메이커로 거듭나고 있는 체코 스코다의 가시밭길 역사를 되돌아봤다.
- 자전거+트랙터=동유럽 최대 메이커 ‘스코다’ 탄생
스코다의 역사는 1894년 ‘L&K’라는 자전거 제작소에서 시작됐다. 바클라프 로린(Vaclav Laurin), 바클라프 클레멘트(Vaclav Klement) 두 형제가 창업자다. 바클라프 형제는 1898년 '슬라비아(Slavia)'라는 첫 오토바이를 판매한 이후, 1905년 타입 A를 발표하며 자동차회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한편 스코다의 또다른 창업자 에밀 스코다(Emil Scoda)는 1895년 체코의 필젠지역의 기계공장을 인수했다. 에밀의 기계공장은 이후 제1차 세계대전 동안 무기공장으로 변신했고, 전후에는 경제회복을 위해 건설에서 항공기생산까지 나서며 대규모 그룹으로 성장했다.
이런 가운데 스코다그룹은 전문적인 자동차 생산에 관심을 갖게 됐고, 1925년 재정상태가 어려웠던 L&K를 인수했다.
이렇게 자동차 생산기술을 얻게 된 스코다그룹은 1926년 프랑스의 이스파노-수이자(Hispano-Suiza)와 라이센스 계약을 통해 자동차를 생산했고, 1929년부터 다양한 모델을 만들었다. 동유럽 최대의 자동차메이커 스코다가 탄생한 것이다.
- 화려한 전성기 이후 전쟁으로 인해 잿더미로 변해
스코다의 전성기는 1930년대였다. 스코다는 이 당시 회사 이름을 ASAP(Automobile Industry Co. Ltd.)로 변경한 뒤 놀라운 내구성과 성능을 가진 여러 모델을 선보이며 유럽 자동차업계의 기린아로 떠올랐다.
실제 스코다는 ‘파풀러(popular)’라는 차량을 타고 체코 프라하에서 인도까지의 세계여행에 성공해 업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이 당시 스코다는 스탠다드(Standard), 래피드(Rapid) 기종 등도 선보였다.
그러나 스코다의 전성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화려한 30년대를 채 보내기도 전에 1938년에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에 휩쓸리며 군수공장으로 다시 변신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시작되자 스코다는 사실상 독일군의 군수공장으로 전락했다. 이로 인해 스코다는 전쟁 막바지였던 1945년 연합군의 폭격을 받아 필젠 공장의 대부분이 잿더미가 됐다.
화려하게 비상했던 스코다가 전쟁으로 인해 추락하게 된 계기였다.
- 정치적 격변 속의 강인한 생명력
2차대전 이후 스코다는 또 한 차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소련의 군정 아래 있던 스코다는 사명을 ASAP에서 AZNP(National enterprise of car factories)로 바꾸며 국유화됐다. 또한 폭격으로 잿더미가 됐던 필젠공장은 상용차 공장으로, 믈라다 볼리슬라프 공장은 승용차 공장으로 나누어졌다. 이후 스코다는 1989년 민영화가 될 때까지 40여년을 정부의 관리하에서 운영됐다.
회사는 국영화됐지만, 스코다는 부활을 시작했다. 특히 1946년 1101(2도어 모델·‘튜더-Tudor’, 1952년 더 세단(The Sedan), 1954년에는 1200, 440 기종 등이 모습을 보였다. 잇따른 신모델 출시에 따라 스코다는 1960년 이후에는 수요를 따라잡지 못해 대규모 공장을 신축하기도 했다.
실제 생산량도 급증했다. 1969년에는 백만대, 1973년에는 2백만대를 돌파했다. 새롭게 선보인 신차들도 1970년에는 S110R을, 1989년에는 페보릿(Favorit)을 등장시켜며 동유럽 최고의 메이커로 거듭났다.
한편 스코다가 1964년 생산했던 1000MB라는 모델은 스코다의 명성에 악영향을 주기도 했다. 모델명인 ‘MB’는 “잔 고장이 많다”는 의미인데, 실제로 고장이 많아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기도 했다.
- 1989년 민영화 이후 2년 만에 폴크스바겐에 인수돼
체코 정부의 비호 아래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하던 스코다에 1980년대의 민주화 혁명은 큰 변화를 초래했다. 당시 ‘벨벳 혁명’을 겪은 체코는 공산정권이 해체되면서 민영화됐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스코다란 사명도 다시 찾아왔다.
그러나 급작스런 민주화는 스코다에 경영난을 가져다주었고, 1991년 폴크스바겐그룹에 인수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당시에도 스코다는 파비아(Fabia), 옥타비아(Octavia), 수펄브(Superb) 등 새로운 모델을 출시했다.
백년역사를 자랑하는 스코다는 최근 업계전문가들 사이에서 “폴크스바겐그룹에 인수된 이후 스코다 만의 색깔을 잃어가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그러나 백년역사 동안 2번의 세계대전과 국영화와 냉전체체 등을 겪은 스코다는,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한 가치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snikers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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