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최대 자동차그룹은 어디일까?
정답은 ‘로버(Rover)그룹’이다. 로버그룹은 한때 로버, 랜드로버, 재규어, 미니, 롤스로이스 등을 소유했던 영국 자동차국영회사의 최대주주로 있었다. 특히 로버는 영국을 대표하는 소형차 미니와 럭셔리 SUV인 랜드로버를 창조한 회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 로버는 존재가 없는 회사다. 보유하고 있던 설비시설은 미국의 GM 시보레에 매각됐고, 해외공장들은 중국의 로위자동차에 매각됐으며, 브랜드 역시 사라졌다.
1877년 설립돼 100년 넘게 영국을 대표하는 자동차그룹이었던 로버사(社). 영국인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던 로버의 화려했던 역사를 짚어봤다.
- 자전거 회사 로버, 에이트로 대박
영국을 대표했던 자동차메이커 로버는 1877년 영국 코벤트리(Coventry)시의 작은 자전거 회사에서 출발했다. 존 켐프 스탈리(John Kemp Starley)와 월리엄 서튼(William Sutton)이 창업한 이 회사는 당시 자전거 제작사 중 선두업체였다.
자전거로 영국을 평정한 로버는 1903년 자전거에 가솔린 엔진을 얹은 로버 임페리얼(Rover Imperial) 모터사이클을 제작하며 자동차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듬해 최초로 모습을 드러난 8마력 모델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중앙 백본 섀시로 제작됐다.
이런 가운데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로버는 영국과 러시아에 군용 모터싸이클을 공급했고, 영국군에는 모즐리트럭(군용트럭)과 선빔 자동차(군용 지휘차량)를 보급했다.
한편 8마력 엔진의 최초 자동차를 제작했던 로버는 이후에도 다양한 종류의 차량을 생산했다. 그러던 중 1919년 로버사의 첫 번째 히트작인 ‘12’모델이 출시됐다. 12마력 2.3리터 엔진에 달고 있는 이 차량은 이후 최초로 생산됐던 8마력 모델을 기념해 ‘로버 에이트(Rover Eight)’란 이름을 받았다.
2기통 이었던 에이트는 이후 영국 서민차의 대표 브랜드였던 오스틴사(社) 세븐(미니의 초기모델)이 출시되기 전까지 영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 히트작 P시리즈와 랜드로버의 시작
에이트 출시로 상당한 인기를 누렸지만, 경쟁사인 오스틴과 모리스에서 대량생산된 저가 차량이 시장에 나오면서 로버의 인기도 주춤하기 시작했다. 로버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여러차례 에이트를 업그레이드했지만, 빼앗긴 관심을 되찾진 못했다.
어려움을 겪던 로버는 1933년 월크스(Wilks) 형제의 경영진으로 영입되면서 재도약을 시작했다. 월크스 형제는 대히트를 기록했던 에이트의 후속작 개발에 나섰고, 이후 좀더 강력해진 모델이 잇따라 개발하면서 로버는 시장의 관심을 되찾았다.
이런 노력에 힙입어 로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차량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1948년 선보인 1.4리터 4기통 엔진의 60모델과 2.1리터 6기통 엔진의 75모델은 이후 ‘P3’로 불리며 로버의 전성기를 예고했다.
이듬해에 로버는 모터쇼를 통해 P4를 선보였다. 이 차량은 초기 보디를 넓게 쓰는 미국적인 디자인이었으나, 이후 로버의 그릴로 대체되면서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P4는 영국에서 ‘애정 어린 아줌마(Auntie)’로 불리면서 1964년까지 13만대가 넘게 생산됐다.
1958년 6기통 엔진을 탑재한 고급세단 P5를 선보인 로버는 영국의 대표 자동차회사로 도약했다. 일체형 바디로 제작된 P5는 우아하면서도 중후해 사회지도자층의 큰 관심을 받았다. P5는 미국 뷰익의 디자인과 엔진을 장작한 3.5리터 모델을 선보였는데, 이 모델은 마가렛 대처 수상에서부터 영국여왕에 이르기까지 유명인사들의 애마가 됐다.
1963년에는 P6가 출시됐다. 그동안의 P시리즈와는 완전히 다른 4기통 엔진에 4륜 디스크 브레이크 등이 장착됐던 P6는 “올해의 자동차”에 선정되기도 했다. P시리즈의 마지막이었던 P6는 1977년까지 생산됐고, 당시 P6 차량은 총 32만5000대가 생산되며 로버 역사상 가장 많이 판매된 모델이 됐다.
한편 P시리즈가 시작됐던 1948년 로버는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700cc 엔진에 좌석이 두 개인 M1을 개발한 것. M1은 4륜구동 섀시로 간단한 바디 디자인을 가졌다. 이 모델은 ‘랜드로버(Land Rover)’란 이름으로 출시됐고, 이후 1970년 레인지로버(Range Rover)를 선보이면서 독자적인 SUV브랜드로서 자리를 잡았다.
- 재규어와 합병 이후, 다시 민영화 성공
2차대전 이후 전성기를 구가했던 로버는 이후 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1965년 고급차 제작업체와 군용차량업체를 잇달아 인수했던 로버는 1966년 스탠다드 트라이엄프(Standard Triumph)사를 소유하고 있는 리랜드(Leyland)에 되레 인수됐다.
당시 리랜드 계열에는 영국의 대표적인 서민차 브랜드였던 오스틴과 모리스, MG 등이 속해있었는데, 이 리랜드사는 다음해인 1969년 재규어를 소유하고 있던 BMC사와 합병하면서 거대 자동차그룹 브리티시 리랜드(British Leyland)가 탄생했다.
그러나 브리티시 리랜드는 잇달은 합병에 따른 경영난에 봉착하면서 1975년 회사를 국영화시켰다. 국영화된 리랜드의 대표이사로 임명된 마이클 에드워즈는 이후 일본의 혼다(Honda)와 손을 잡고 소형차 라이센스 생산에 나선다.
이런 가운데 그라함 데이(Graham Day)가 대표이사로 임명되면서 로버는 민영화 프로젝트에 나서기 시작했다. 사명 역시 로버그룹으로 변경했고, 혼다의 중형차 디자인(아큐라 초기 디자인)을 사들여 고급세단 차량인 800도 새롭게 출시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로버는 1988년 에어로스페이스(Aeroapace)에 매각되면서 민영화에 성공했다. 이때부터 로버그룹은 세단은 ‘로버’, 스포츠카는 ‘MG’, 4륜SUV는 ‘랜드로버’로 소형차는 ‘미니’로 나누며 브랜드화에 나서기 시작했다.
- BMW에 인수된 로버, 4등분으로 쪼개지며 공중분해
그러나 민영화 성공 6년 뒤인 1994년 로버그룹은 독일의 BMW에 다시 인수됐다. BMW는 로버를 자신들의 브랜드보다 낮은 준프리미엄 브랜드로 육성하기 위해 로버를 인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탄생한 차량이 바로 로버의 마지막으로 불리는 75모델이다. 하지만 75모델은 정체성 없는 디자인과 고급화로 인한 높은 가격으로 인해 고객들이 외면했고, 결국 BMW는 로버그룹을 인수한지 8년만인 2006년 재매각에 나섰다.
BMW는 로버그룹의 4대 축 중 하나였던 미니는 자신들이 계속 보유하기로 결정했지만, SUV 브랜드 랜드로버는 1억8000만 파운드에 미국 포드사에 넘겼다.
로버와 MG는 'MG로버‘란 이름으로 피닉스 컨소시엄에 팔렸다. 그것도 단돈 10파운드에. 피닉스는 이후 MG로버를 살리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하지만, 결국 파산했다.
이렇게 파산한 MG로버는 중국업체들에 팔리게 된다. 난징자동차는 MG브랜드와 생산시설을 사들였고, 상하이자동차가 로버를 가겨갔다. 하지만 포드사가 ‘로버’ 브랜드를 먼저 선점하면서 상하이자동차는 ‘로위’라는 이름으로 75모델을 중국에서 판매하고 있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며 영국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자동차메이커였던 로버그룹. 한때 미니와 랜드로버, 재규어 등을 계열사로 두며 영국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지만, 지금의 로버그룹은 4조각으로 나눠진 채 간판마저 ‘로위’란 이름으로 변형돼 버렸다.
snikers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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