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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story

[Ford] 자동차 대중화 시대를 연 100년 역사의 T-Legend


‘10 Million seller!’

자동차 회사라면 항상 꿈꾸는 목표가 있다. 바로 단일 모델로 일천만대 이상 팔린 차를 의미하는 ‘Ten Million Seller’가 그것이다.

이 목표를 이룬 자동차는 현재까지 3개 모델에 불과하다. 100년이 넘는 자동차 역사에서 수많은 회사들이 이 목표에 도전했지만, 폴크스바겐의 비틀(Beatle)과 도요타의 카롤라(Corolla), 포드사의 T형 포드 만이 천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중 T형 포드가 갖고 있는 의미는 특별하다. 다른 자동차회사들이 부자들을 위해 고급스럽고, 화사한 모델을 만들었던 것과는 달리 일반시민들이 탈 수 있는 값 싸고, 튼튼한 차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동차 대중화의 선구자”란 평가를 받고 있는 포드자동차그룹. 컨베이어시스템 도입을 통해 부유층의 상징이었던 자동차를 서민의 생필품으로 만들어낸 포드의 역사를 뒤짚어봤다.

- 엔지니어 헨리 포드, 1903년 회사를 세우다!

포드사(社)의 설립자 헨리 포드는 1863년 디트로이트 부근 디어본에서 태어났다. 농부의 아들이었던 그는 16살이 되던 해, 디트로이트에 오게 되면서 자동차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당초 증기기관차회사에서 엔진기술을 배우던 포드는 1891년 에디슨 전기회사에 입사하면서 엔진 개발에 착수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포드는 1896년 최초로 2기통 엔진을 단 자동차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포드는 발명왕 에디슨과도 친분을 쌓았다.

자동차 개발에 성공한 포드는 1899년 디트로이트자동차회사를 설립한다. 하지만 이 사업은 사실상 실패로 마무리됐다. 첫차 개발 이후 상용화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드는 자신이 만든 두 번째 자동차를 갖고 레이싱 대회에 참가해 1901년 72km/h라는 경이적인 속도로 우승을 차지한다.

이 우승은 포드에게 다시 회사를 설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놀라운 속도를 기록하며 우승한 덕분에 많은 투자자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포드는 이들의 투자를 받아 1903년 포드자동차회사를 정식으로 설립했다. 이후 첫 번째 자동차인 모델 A(2실린더 8마력)와 모델 B, 모델 K를 만들었지만, 당시 미국의 자동차회사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다시 어려움에 봉착했다.

- 컨베이어시스템 도입, 자동차 대중화를 이끌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포드는 1908년 T형 포드를 생산한다. T형 포드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자동차였다. 다른 회사 차량들의 가격이 2천달러 수준인데 반해, T형 포드의 가격은 825달러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능 또한 우수했다. 직렬 4시통 3000cc 엔진을 달고 있던 T형 포드는 시속 60km/h 이상이 속도를 기록했다. 당시 이 같은 성능은 고급 차량에서나 볼 수 있는 정도였다.

여기에 포드는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면서 T형 포드의 가격을 계속 낮춰갔다. 당초 825달러였던 T형 포드는 1923년 200만대 생산을 돌파한 뒤, 25년에는 대당 가격을 260달러까지 낮추면서 일반인들에게도 자동차를 살 수 있다는 꿈을 심어줬다.


이처럼 포드사가 T형 포드의 가격을 낮출 수 있었던 것은 대량생산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당시 자동차들은 대부분 수작업으로 진행하다보니 값이 매우 높았다. 게다가 부품의 규격도 일정치 않아 수리에도 많은 비용이 들었다. 하지만 포드는 모델을 단일화한 후, 부품의 규격을 통일해 가격을 낮췄다.

여기에 1913년에는 컨베이어식 조립라인을 도입시키면서 자동차 대량생산 시대를 열었다. 이로 인해 T형 포드는 1927년 단종시까지 단일모델로는 최초로 1,500만대를 생산했으며, 당시 미국 자동차 시장을 독식했다.

- 스포츠카 열풍과 세단의 중흥을 이끌어내다!

T형 포드로 큰 성공을 거둔 포드사(社)는 1922년 프리미엄 브랜드였던 링컨(Lincoln)을 인수한다. 이어 T형 모델을 해외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잘 나가던 T형 모델의 인기도 시간이 흐르면서 시들해진다.

결국 50%를 넘었던 포드의 시장점유율은 1925년 50% 이하로 떨어졌으며, 1933년 T형 포드의 후속모델 출시에도 불구하고 점유율은 GM, 크라이슬러보다 낮아지며 위기가 찾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권을 물려받은 포드 2세는 경영과 생산의 합리화를 추진한다. 또한 1949년 모델 49를 출시한 데 이어, 55년에는 선더버드를 선보인다. 선더버드는 출시 직후 큰 인기를 얻으면서 미국 시장에서 스포츠카 열풍에 불을 지폈고, 포드 2세는 이를 기회로 64년 포드사의 또다른 전설로 불리는 ‘머스탱’을 출시한다.

선더버드에 이은 머스탱 출시로 포드사는 그야말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다. 머스탱은 출시 2년 만에 100만대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고, 포드는 이를 통해 모터스포츠계의 강자로 군림하게 된다.

그러나 머스탱 이후 히트작을 선보이지 못했던 포드사는 또다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결국 포드 2세에 이어 CEO가 된 콜드웰은 회사의 손실 축소를 위해 군살빼기와 체질개선에 나선다.

콜드웰 회장에 이어 취임한 피터슨 회장은 조직개편 이후 세단의 중흥을 이끌어낸다. 포드의 대표적인 세단으로 불리는 토러스와 세이블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토러스/세이블은 단숨에 베스트셀러카에 오르면서 포드사를 다시한번 미국 시장 1위업체로 끌어올렸다.

- 7개 브랜드의 글로벌 메이커, 럭셔리로 진화

포드사(社)는 현재 설립자인 헨리 포드의 증손자인 월리엄 클레이 포드 주니어가 이끌고 있다. 클레이 회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 자동차업계가 극심한 불황과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현재에도, 굳건히 회사를 지키고 있다. 그동안의 부침이 탄탄한 경영여건을 만들어줬다는 평가다.

현재 7개 자동차 브랜드(포드, 링컨, 머큐리, 재규어, 볼보, 마쓰다, 애스턴마틴)를 보유하고 있는 포드사(社)는 최근 브랜드 중 일부를 매각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프리미엄 브랜드인 링컨의 리뉴얼과 신차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대량생산을 통해 대중화를 이끌고, 선더버드와 머스탱을 통해 스포츠카 붐을 일으켰던 포드, 석유파동 이후 세단의 중흥을 이끌면서 유행을 선도했던 포다는 현재 링컨을 앞세우며 럭셔리 브랜드로의 변신을 진행 중이다. 자동차 문화를 선도해온 포드의 행보가 기대된다.

snikerse@medi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