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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story

[Chrysler] 왜건에서부터 머슬카까지... 미국적 디자인의 원조


“유럽에 슈퍼카가 있다면 미국에는 ‘머슬카’가 있다!”

‘머슬카의 원조’라 불리는 미국의 크라이슬러는 현재 미국의 3대 자동차 메이커다. 독일의 다임러 벤츠와의 합작경영으로도 잘 알려진 크라이슬러는 산하에 닷지(dodge)와 지프(Jeep) 등의 디비전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크라이슬러는 사실 태생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GM CEO 출신인 월터 P. 크라이슬러가 1921년 설립한 크라이슬러는 당시 생산차량이 없어 자동차쇼에서 조차 문전박대를 당하는 처지였다.

이에 월터는 자동차쇼 입구에 있는 뉴욕 커머더 호텔 로비에 자신이 생산한 첫차 ‘크라이슬러 6’를 전시했고, 대박을 터뜨렸다. 미국 3대 메이커로 성장한 크라이슬러는 이처럼 어렵게 탄생했다.

- 임페리얼 시리즈로 돌풍 일으킨 크라이슬러

크라이슬러의 본신은 미국 맥스웰 모터 코퍼레이션이다. GM CEO로 수백만달러를 모은 월터는 1921년 맥스웰을 사들였고, 차량 생산에 돌입했다.

이후 23년 첫 차량을 생산한 크라이슬러는 24년 북미 오토쇼 당시 공개했던 ‘크라이슬러6’가 첫해에만 3만2,000대가 팔려나가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1925년 정식 회사법인 이름을 ‘크라이슬러’로 정한 월터는 첫 번째 모델로 ‘임페리얼’ 시리즈를 등장시킨다. 당시 임페리얼 시리즈는 4기통 3000cc 모델과 6기통 3500cc, 4700cc의 3가지로 선을 보였는데, 27년까지 한해당 5만여대 가까이 팔려나가며 크라이슬러를 유명메이커로 만들어줬다.

특히 1931년에 소개된 6300cc급 ‘CG 임페리얼’는 화려한 모습과 엄청난 덩치였지만,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해 큰 인기를 누렸다. 임페리얼 시리즈는 이후 계속 생산되다가 1975년 독립 디비전으로 자리를 잡았다.

크라이슬러는 이외에도 1928년 닷지 브러더스社(Dodge Brother Inc.)를 인수한다. 닷지를 통해 크라이슬러는 포드, GM의 시보레와 같은 저가 브랜드로도 진출했다.

- 패밀리카의 원조 ‘왜건 스타일’ 구축

크라이슬러는 이후 유선형 디자인에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6년간의 개발기간을 거쳐 1934년 에어플로우(Airflow)를 선보인다. 하지만 뛰어난 디자인과 기술력에도 불구, 앞서가는 디자인으로 에어플로우는 3년 만에 단종 됐다.

에어플로우의 실패 이후, 여러 종의 차를 내놓았던 크라이슬러는 2차대전 중이던 1941년 미국 자동차 역사에 한획을 긋는 새로운 자동차를 선보인다.

바로 ‘왜건’이다. 당시 크라이슬러는 왜건의 지붕을 곡선으로 처리한 새로운 스타일의 차량인 ‘타운&컨트리’란 모델을 선보였는데, 이때부터 왜건의 디자인이 대부분 이와 유사해진다.

종전 이후 50년대에는 반구형 실린더헤드를 가진 헤미(Hemi)형 엔진을 개발하면서 자동차업계에 마력 전쟁을 일으킨다. 51년 출시된 ‘300 시리즈’가 바로 그것이다. 300시리즈는 당시 경쟁 차종이었던 캐딜락과 배기량은 같았지만, 출력 면에서 20마력 이상 높아 인기를 끌었다.

당초 포드의 경쟁차종으로 개발됐던 ‘300 시리즈’는 뉴요커를 기본 베이스로 하고 있으며, 해마다 다른 버전으로 출시됐다.

- 해결사 ‘아이아코카’의 등장과 바이퍼 개발

설립 이후부터 내놓은 차마다 큰 히트를 치며 성공가도를 달려온 크라이슬러였지만, 70년대 초반 터진 전 세계적인 악재는 큰 혼란을 야기시킨다. 바로 ‘오일쇼크’다.

당시 대형차 위주로 생산라인을 정비하고 해외사업 확장에 주력했던 크라이슬러는 1972년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파산 위기에까지 몰리게 된다. 오일쇼크로 인해 경기가 침체되면서 엄청난 양의 재고가 쌓였기 때문이다.

위기를 느낀 크라이슬러는 결국 ‘리 아이아코카(Lee Iacocca)’를 회장으로 영입한다. 아이아코카 회장은 CEO에 취임하자마자 인원감축과 연봉삭감을 진행하고, 정부로부터 15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얻어온다. 그리고 새로운 돌파구로 ‘K-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아이아코카의 노력으로 재건에 성공한 크라이슬러는 1984년 이탈리아 마세라티 지분 16.5%를 인수하며, 다시 해외시장에 눈을 돌린다. 또한 1987년 아메리칸모터스를 8억달러에 인수하며 4륜구동의 대명사로 불리는 지프(Jeep)를 디비전으로 포함시킨다.

되살아난 크라이슬러는 1992년 로버트 루츠 사장의 지휘아래 스포츠카 개발에 주력한다. 이렇게 탄생한 스포츠카가 바로 닷지 바이퍼다. 바이퍼는 이후 머슬카의 전설이란 평가를 받게 된다.

해결사 아이아코카는 바이퍼의 성공 이후 명예롭게 물러난다. 이후 루츠 사장은 회장으로 승진했고, 세브링(Sabring), 어벤저(Avenger), 네온(neon) 등을 잇달아 성공시켰다.

- 벤츠와 합병 후 아메리칸 럭셔리 스타일 추구

이후 평온한 90년대를 보내던 크라이슬러는 1998년 5월 세계 자동차업계의 시선을 한몸에 받게 된다. 세계 3대 명차 브랜드로 불리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모회사인 다임러벤츠와 합병을 결정한 것. 이 합병을 통해 크라이슬러의 회사 이름도 다임러-크라이슬러(Daimler-Chrysler)로 변경했다.

다임러와의 합병 이후 크라이슬러는 새로운 복고풍의 차종을 잇달아 선보인다. 대표적인 차종이 바로 PT크루저다. 여기에 새롭게 재해석한 300시리즈를 등장시키면서 세단 부문에서 놀라운 성장을 이룩한다.

자동차업계 전문가들은 “300C 등 최근 크라이슬러는 미국적인 럭셔리 카의 진수를 보여 준다”면서 “큰 덩치와 화려한 외관에도 낮은 가격과 합리적인 연비가 가장 큰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엔지니어가 아닌 경영자가 설립한 크라이슬러, 소비자들이 니즈를 먼저 읽고 앞선 차량을 선보이면서 승승장구해온 크라이슬러의 내일이 기대된다.


snikers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