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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story

[Chevrolet] GM설립자가 만들어낸 가장 미국적인 모터 브랜드


상반기 국내 극장가를 점령했던 트랜스포머 열풍!

600만명의 국내 관객수를 기록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노란색 스포츠카는 어디에서 만든 차일까?

정답은 GM그룹 산하의 시보레(chevrolet) 카마로(Camaro)다. 극중 ‘범블비’란 이름으로 등장하며 멋진 근육질의 스포츠카에서 강력한 로봇으로 변신하는 카마로는 트랜스포머 열풍에 힘입어 가장 주목받는 자동차가 됐다.

카마로를 만든 자동차브랜드 시보레는 사실 국내에서는 친숙한 브랜드다. GM대우 차량 10대중 3~4대에 붙어있는 노란색 덧셈(+) 엠블럼이 바로 시보레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실제 GM대우가 판매하고 있는 라세티 프리미어와 토스카는 시보레란 이름으로 미국시장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친숙하지만 어딘가 낯선 시보레. 내년이면 100번째 생일을 맞게 되는 글로벌 브랜드 시보레의 역사를 살펴봤다.

- GM에서 쫓겨난 듀런트, 시보레를 창업하다!

시보레의 창업자는 월리엄 듀란트(William Durant)와 루이 시보레(Louis Chevrolet)다. GM그룹의 설립자이기도 한 듀런트는 회사를 뷰익(Buick)의 레이싱 선수로 잘 알려졌던 루이와 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듀란트는 뷰익과 올즈모빌, 캐딜락을 인수하며 GM그룹을 일궈냈지만, 이후 판매량이 급감하면서 자신의 지분을 채권단에 넘겨주면서 GM에서 쫓겨난 상태였다. 그는 1911년 말 루이와 함께 Chevrolet Motor Car Co.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하고, 다음해 ‘클래식 식스(Classic Six)’라는 첫 차를 생산하며 재기에 나섰다.

클래식 식스는 1913년에만 5,987대나 판매됐지만, 보급형 자동차를 주장하는 듀란트와 고급차를 제작하려는 루이가 대립하면서 결국 동업자였던 루이는 회사를 떠났다.

당시 미국에서는 포드사가 모델 T를 대량생산하면서 빅 히트를 하던 시기였다. 듀란트는 이에 2.8리터의 490을 선보였고, 이 차량이 성공하면서 시보레는 GM의 디비전으로 흡수됐다. 듀란트 역시 자신이 설립했던 GM그룹의 최고경영자로 복귀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GM은 다시 매출이 하락하면서 위기를 맞았고, 듀란트는 2년 만에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퇴임을 당했다. 신임 회장이었던 피에르 듀폰은 당시 듀란트 퇴임 직후 ‘시보레’를 폐쇄하려 했지만, GM의 구세주였던 알프레드 슬론(Alfred P.Sloan) 부회장의 반대로 존속됐으며, 1920년대 중반부터는 GM의 주축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 숙적 포드사와의 경쟁에서 앞서다!

성장을 거듭하던 시보레는 1923년 공냉 엔진을 개발하며 자동차기술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다. 코퍼-쿨드(Copper-cooled) 엔진이라고도 불렸던 공냉 엔진은 겨울에 냉각수가 얼거나 여름에 끓어 넘치는 문제를 해결한 데다, 부품이 적어 가볍고 출력이 커 월 5만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시보레의 성장이 본격적으로 지속되면서 포드사와의 경쟁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포드사는 대량생산 방식을 통해 시보레보다 6배 이상의 매출을 올렸으나, 1927년 시보레에게 매출액에서 역전을 허용한다. 당시 포드사는 시보레의 1/5의 판매량에 그칠 정도로 부진한 매출을 기록했다.

이때부터 시보레는 미국 대표 브랜드로 군림하기 시작하면서 포드사의 매출액 추월을 단 4차례만 허용할 정도로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했다.

숙적 포드사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시보레는 1928년부터 연식에 따라 다른 이름을 붙이는 새로운 마케팅을 전개한다. 1928년식은 내셔널 시리즈, 1929년에는 인터내셔날 시리즈, 1930년식은 유니버설 시리즈, 1931년식은 인디펜던스 시리즈, 1932년식은 컨페더레이트 시리즈, 1933년식은 마스터 시리즈 등이 그것이다. 이중 1933년의 마스터 시리즈는 1942년까지 생산됐다.

자동차전문가들은 당시 시보레의 인기에 대해 “앞바퀴에 독립 현가장치를 부착해 승차감과 핸들링에서 포드사와 큰 차이를 보였던 것이 이유”라며 “이를 통해 타이어 마모 현상도 크게 줄어들었다”고 평가했다.

이후 시보레는 2차대전 동안 트럭과 폭격기 엔진을 제작하기도 했으며, 전후 50~60년대 미국의 대표 브랜드로서의 역사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 미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메이커가 되다!

시보레는 전후 라인업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과거 생산해왔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뀐 시보레는 1946년 스타일라인(Styleline), 플리트라인(Fleetline)을 출시한다. 시보레가 이렇게 디자인에 변화를 주게 된 계기는 유럽 자동차회사들이 2차 대전 이후 미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글로벌 자동차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시보레는 ‘미국의 자존심’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코르벳(Corvette)’을 1953년 출시한다. 코르벳은 당시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재규어 XK120의 경쟁상대로 등극하며 마니아층을 형성했고, 현재까지도 시보레의 간판 모델이 되고 있다.

1955년 선보인 벨 에어(Bel Air)는 미국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완전히 바꿔 놓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당시 미국인들은 자동차에 짐을 싣고 훌쩍 떠나는 여행을 즐겼는데, 이는 벨 에어 왜건형의 등장 때문이란 평가를 받았다.

게다가 1957년에는 당시 트렌드였던 테일핀 디자인 중 가장 화려한 모델로 평가받는 벨에어 모델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시보레는 GM그룹 디비전 중 하나였던 캐딜락과 함께 스포츠라인업으로 임팔라(Impala)를 1958년 출시했으며, 1960년에는 미국 최초의 4륜 독립 현가장치를 갖춘 코베어(Corvair)를 내놓았다. 하지만 임팔라는 스포츠카모델임에도 불구, 핸들링이 불안하고 언더스티어링 현상으로 인해 시보레의 경쟁사였던 포드 머스탱(Mustang)과의 경쟁에 밀려났다.

이에 시보레는 1966년 야심작 카마로(Camaro)를 발표한다. 카마로는 이후 레이싱 경주에서 좋은 성적으로 거두면서 코르벳과 함께 시보레의 대표 스포츠라인업으로 자리 잡았다.

- 시보레의 질주는 계속된다!

50~60년대 전성기를 보낸 시보레는 70년대 들어서면서 오일쇼크 등으로 인해 노바(Nova), 베가(Vega) 등 소형차를 발표하며 소형차 시장에 눈을 돌린다. 하지만 소형차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시보레는 이 시기에 또 다른 소형차인 쉬베트(Chevette)를 통하여 해외 진출을 나섰다. 브라질, 영국, 독일, 호주, 일본 등에서 모델명만 변경하여 생산했는데, 우리나라에는 1977년~1981년까지 새한자동차(GM대우의 전신)의 제미니(Gemini)라는 이름으로 18,900대가 생산됐다.

현재 시보레는 카마로, 카발리에(Cavalier), 코르벳, 임팔라 등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녹녹치 않다. 유럽 자동차 브랜드들이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면서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보레는 여전히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블록버스터 영화 ‘트랜스포머’에 자사 차량들을 대거 등장시키면서 자사 라인업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뷰익과 함께 가장 미국적인 브랜드로 평가받으며, 글로벌 자동차시장의 맹주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시보레. 100여년이 다된 이 브랜드가 여전히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snikers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