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렐리와 모터스포츠는 뜯어낼려야 뜯어낼 수 없는 관계다. 처음부터 타이어산업의 역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피렐리의 역사 자체가 바로 승리와 기술 도전의 기록이다. 수년간 밀라노에서 피렐리의 엔진니어들은 자동차 및 카레이스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일반 도로용 타이어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왔다.
1872년 설립된 피렐리는 이후 1897년부터 오토바이 레이스에 참가했다. 당시에는 2륜차와 4륜차를 가리지 않고, 포장도로나 트랙 등과 상관없이 달렸다. 피렐리 모험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그로부터 한세기게 지나는 동안 총 45회의 그랑프리 우승, 6차례의 챔피온, 그리고 200회에 가까운 랠리 우승 기록을 썼다. 100년이 넘는 피렐리의 고속질주의 역사로 들어가보자
- 20세기의 시작
1897년 지오반니 바티스타 피렐리(Giovanni Battista Pirelle)는 모터스포츠에 참가하는 전문 오토바이 레이서가 타는 차에 타이어를 공급할 수 있는 기회를 발견했다. 피렐리는 1905년 Susa-Moncenisio 로드 레이스에 최초로 진출했다. 1년 전 피렐리 회사의 타이어가 밀라노에서 로마까지의 비경쟁적 주행에 참여하긴 했지만, 피렐리는 1906년 되어서야 진정한 의미의 우승을 기록했다. 바로 '산레모 오토모바일 위크'에서 거둔 승리였다.
1907년 피렐리는 최초로 헤드라인 뉴스에도 올랐다. Luigi Barzini와 Prince Scipione Borghese가 ITALA에 피렐리 타이어를 장착해 Epic Pecking-Paris 레이스에서 우승했다. 당시 역사적인 승리 이후 길게 늘어진 'P' 로고가 다음해 New York-Paris rally에 처음으로 사람들의 시선에 들어왔다. 당시 P로고는 대중들에게 다른 경쟁 타이어와 차별화하면서 방향성을 제시하는 취지로 완성했다.
- 1910년대
1913년은 참으로 기억에 남는 해이다. 피렐리라는 이름이 점차적으로 모터스포츠 분야에 명성을 날리기 시작하며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참가하는 경기마다 압승을 거두었다.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Jacques Boillot와 Louis Goux는 피렐리 타이어를 장착한 푸조로 각각 1, 2위로 우승했다.
시칠리아 타르가 플로리오의 전설적인 우승자 Felice Nazzaro 선수는 지오바니 바티스타 피렐리에게 발송한 전보에서 ‘피렐리 타이어가 바로 경기에 승리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며, 과거 한 바퀴의 기록을 깰 수도 있었다.’라고 전했다.
승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피렐리 타이어는 명성이 높은 La Sarthe 스피드 테스트에서도 우승했을 뿐만 아니라 그랑프리 de France Le Mans 및 Mont Ventoux 레이스에서도 선두를 달렸고 Boulogne sur Mer Coupe de l’Auto 에서도 물론 우승을 차지했다.
- 1920년대
이탈리아 오토바 클럽에서 주최한 그랑프리는 1922년에 Monza에서였고 우승자는 Felice Nazzaro와 Pietro Bordino 선수이며 모두 피텔리 슈퍼플렉스 코드(Superflex Cord) 타이어를 장착한 Fiat 804 차종을 타고 경기에 참가했다. 1924년에 Alfa Romeo와의 협력이 시작되었으며, 당시 모든 그랑프리 레이스의 우승을 한동안 독차지한 Antonio Ascari와 Giuseppe Campari의 Alfa P2S가 있었다. Gastone Brilli Peri는 최초로 세계 챔피언을 1925년 이탈리아 Monza 그랑프리에서 거머쥐었다. Alfa Romeo와 피렐리 슈퍼플렉스 코드는 ‘우승의 타이어’로 유명세를 떨쳤고 월드 챔피언의 왕관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피렐리의 승리는 그 뿐이 아니었다.
- 1930년대
Tazio Nuvolari는 이 시대를 전적으로 지배한 선수였다. Mantovan 선수는 피렐리 타이어를 장착한 Bianchi 오토바이 선수로 유명했고 1925년 이 선수는 자동차 레이스 쪽으로 진출하여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Alfa Romeo P2를 운전하고 경기에 참가했다. Enzo Ferrari가 전설적인 팀을 구성하여 Alfa Romeo와 피렐리의 Stella Bianca 타이어에 재직할 때 그의 명성을 날렸으며 덕분에 누볼라리도 1930년에 Mille Miglia 클래식 경기 우승에 이어 1932년에 Monza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탈리아란 이름은 더 이상 누구도 대적하지 못하게 역사에 한 장을 기록했다.
오토바이 레이스에서 Guzzi, Gilera와 Bianchi사 차량에는 피렐리 모터코드 타이어를 사용했다. Taruffi, Alberti, Vanni 그리고 Sandri 같은 선수들은 이 타이어를 장착한 Guzzi 250 및 Gilera 500을 타고 1937년부터 1939년까지 계속 기록을 경신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모터 스포츠는 한동안 중단 되었다가 Guzzi와 Gilera가 스피드 테스트를 재시도해 1940년대부터 모터스포츠가 다시 되살아났다. 1948년에 피렐리는 Gilera 500 엔진이 장착된 BISILURO에 타이어를 장착하여 시속 300km의 속도를 달성했다.
- 1950년대 및 1960년대
피렐리와 Alfa Romeo는 영화 ‘The Final Encounter’로 영화계에 진출했다. 그 영화의 주연은 이탈리아 유명스타 Amadeo Nazzari였다. 영화제작은 세트장에서 촬영한 대신 1950년 9월에 Monza에서 진행한 이탈리아 그랑프리 경기를 배경으로 했다. 주인공은 Nazzari가 하는 카 레이스 선수 역으로 출연했지만 사실 대역 Juan Manuel Fangio가 운전대를 잡아 연출을 했다. Fangio가 바로 피렐리를 장착한 Alfa Romeo 159로 1951년 F1에서의 우승한 전설적인 세계 챔피언이다.
1950년에 Turin에 개최한 F1 월드 챔피언 경기에서는 Fangio는 다른 2개의 경기 때문에 그 영광을 Nino Farina에 주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해 Monza에서 개최한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는 Alfa Romeo가 피렐리의 유일한 공식 파트너가 아니었다. 피렐리의 Stella Bianca 타이어는 업그레이드 버전이며 새로운 이름으로 Louis Chiron의 Maseratis의 페리스 Felice Bonnetto에 장착, Ascarino의 Ferrari375에 장착했다. Alberto Ascari는 1924년 이탈리아 그랑프리 우승자 Antonio Ascari의 아들이었다.
1951년 시즌은 Cinturato의 해로 기억에 남는다. 피렐리의 특허로 전체 분야에 혁명을 일으켰으며, 1965년에 Monza에서 Fangio가 증명하기도 했다. Ascarino는 1952년에 피렐리 Stella Bianca 타이어를 장착해서 세계 챔피언이 된 그 다음 해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Farina, Fangio와 Ascari 등 선수들의 노력으로 피렐리는 연이어 4차례의 세계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1955년 5월 26일 Alberto Ascari는 Monza에서 Ferrari로 세션을 진행하기로 했다. 불행하기도 그는 트랙에 한 코너를 고속으로 돌 때 사고가 나서 치명적인 부상으로 사망했다.
1954년 Maurice Trintignant와 Froilan Gonzalez는 피렐리를 Ferrari375MM+에 장착해 Le Mans 24시에서 우승을 했다. 이 이탈리아 회사는 카레라 Carrera Panamericana부터 1000 Miglia, F1 그랑프리, 그리고 Sebring 12 Hours 등 모든 경기에 적합한 다양한 타이어를 지속적으로 개발하면서 1957년 Jean Behra와 Juan Manuel Fangio가 마세라티 450S로 우승을 했다. 그 해 말 피렐리는 F1에서 잠깐 퇴장했다.
- 1970년대
1970년대 피렐리는 랠리 캠페인을 시작했으며 회원수가 가장 많을 때는 200 우승에 달했다. 이는 1973년 Achim Warmbold와 Jean Todt가 Fiat Abarth 124로 폴란드 랠리(월드 랠리 챔피언 최초 우승의 해)에서부터 시작해 최근에 Sebastien Loeb와 Daniel Elena가 Citroen C4 WRC로 2010년 랠리 크레이트 브리틴에서 우승했다. 그 와중에도 기록적인 승리가 있다. 예를 들어 Markku Alen이 1984년 Tour de Corse에서 Lancia Rally 037로 우승, Sandro Munari가 Lancia Stratos로 Monte Carlo에서 1975년부터 1977년까지 우승을 차지했다. 뿐만 아니라 Stig Blomqvist가 1983년 Sanremo Rally에 우승, 그리고 피렐리의 100번째 월드 랠리 우승은 1997년에 Richard Burns와Robert Reid가 Subaru Impreza WRC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탈리아인으로 자기 고향에서도 많은 승리를 거두었다. Franco Cunico는 최초로 산레모에서 Ford Escort Cosworth로 1993년에 우승했고 Piero Liatti도 Subaru Impreza로 피렐리 P Zero에서 우승을 했다. 피렐리의 월드 랠리 챔피언 캠페인 이외에 Ford가 피렐리 타이어를 유일하게 장착한 자동차 회사로 최근에 2010년 Monte Carlo Rally 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이 시기에는 오토바이 시장이 신속한 변화를 겪었다. 다양한 종류의 모델이 인기를 얻었으며, 그 중에 모토크로스, 엔듀로 및 오프로드 오토바이의 수량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때문에 피렐리는 자신의 오토바이 레이스에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레이싱팀과 선수들로부터 환영을 받게 되었다.
- 1980년대 및 1990년대
1981년에 피렐리는 다시 F1에 복귀하기로 선언했으며 이는 1956년에 경기를 떠나고 25년 만에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1980년대 전체 피렐리는 P7 레이디얼 타이어로 성공을 이어왔다. 이 타이어는 피렐리에서 그 때 당시에 제작한 가장 복잡한 경기에서만 사용하는 제품이었다.
1981년 F1 월드 챔피언 경기에서는 이 P7 타이어는 Brian Henton와 Derek Warwick의 Toleman TG181 차에 장착해서 경기에 참가했다. 그 이후 피렐리의 F1용 타이어는 Osella, Arrows, Fittipaldi, Minardi 뿐만 아니라 Lotus와 Brabham BMW와 같은 유명한 팀으로부터도 채택되었다. 1983년에 Elio De Angelis와 Nigel Mansell의 JPS Lotus차에 피렐리의 타이어를 장착하고 경기를 참가해 좋은 결과를 내었다. Mansell는 Silverstone에서 4위를 했고 Brands Hatch에서 3위를 했다. 동시에 같은 등급의 유럽 그랑프리 De Angelis에서는 ‘폴 포지션’이라는 경기 중에 우선순위에 위치한다는 이름을 얻었다. 1984년에 Toleman는 Ayrton Senna라는 젊은 테스트 선수를 채택하고 난 후 최종적으로 기록에 남을 만한 챔피언 선수로 양성했다.
1985년에 브라질 선수 Nelson Piquet는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피렐리를 장착한 Brabham BMW로 기록적인 우승을 차지하여 밀라노에서 친구들과 함께 승리의 축배를 들었다. 그 다음 해 독특한 스타일의 그린 Benetton-BMW는 선수 Gerhard Berger와 같이 맥시코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기록했다.
1991년 이탈리아 그랑프리, 피렐리의 F1 마지막 해, Benetton 진영에는 Michael Schumacher와 Nelson Piquet들이 있었다. ‘ P Zero’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피렐리 타이어 사이드에 나타났다. 그 이후부터 피렐리의 모든 스포츠용 제품에서는 이런 로고를 사용했다.
F1을 다시 떠나고 피렐리는 랠리경기와 ‘P zero’ 파생제품 경기에 총력을 다했다. 이는 선수 및 카 레이싱 팀이 참조할 만한 포인트가 되었다.
- 현재
20년 동안 자리를 비운 후 피렐리는 또 다시 도전과 열정의 동의어인 F1에 복귀했다. 2010년 6월 FIA (Federation Internationale de l’Automobile)는 피렐리라는 이탈리아 타이어 회사와 2011-2013 3년간 타이어 독점 공급의 명예를 부여했다.
그 발표를 하고 난 2개월 후 피렐리의 엔지니어는 2011년 F1 월드 챔피언 경기 규정에 들어간 6가지 제품조합을 테스트할 준비를 했다. 첫 번째 테스트는 Mugello에 진행할 것이고 독일 선수 Nick Heidfeld의 Toyota TF109 의 휠에 장착해 피렐리의 테스트 선수로 했다.
2010년 11월 F1 시즌이 끝날 때 피렐리 P Zero 타이어가 Abu Dhabi 서키트에서 최초로 공식 그룹에 모든 차에 장착해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중동 경기에서는 피렐리는 2011년 전체 시즌에 F1 사상 전미의 테스트를 진행했다. 밤에 젖은 트랙에서 진행한 테스트입니다. 이는 그랑프리 경기 중에 비가 오는 상황을 대비하는 테스트다.
2011년 3월 27일 호주 멜버른 엘버트 공원(Albert Park)에서 전체 33일의 테스트(15일은 공식 테스트와 18일의 개인 테스트) 끝에 2011 그랑프리 첫 시즌이 피렐리의 새로운 F1 시대를 활짝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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