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당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vol 3월호에 게제됐습니다. >
“라이온스라인의 치명적 매력!”
가장 아름답고 품위 있는 자동차로, 전 세계 자동차 마니아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영국의 재규어. 바로 이 재규어가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트렌드를 주도하며 업계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중후하면서도 점잖았던 과거 이미지에서 벗어나 화려함과 세련미를 갖은 야성적인 재규어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사실 재규어는 묵직하면서도 중후함 이미지가 돋보이는 럭셔리 브랜드였다. 영국 왕실의 의전차량으로 지정될 정도로 뛰어난 화려함을 자랑했다. 하지만 화려함과 중후함이 강조되면서 재규어의 이미지는 점잖은 사람들이 타는 차로 인식됐었다. 그러나 2007년 이후 재규어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숨겨왔던 발톱을 드러낸 것이다. 중후함이 강조됐던 디자인은 젊은 감각의 세련된 이미지로 탈바꿈했고, 성능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됐다.
환골탈태를 거친 재규어는 이제 글로벌 자동차트렌드의 핫 아이콘으로 주목받고 있다. 변두리의 전장 제작업체로 시작해, 영국을 대표하는 럭셔리브랜드로 성정한 재규어의 날렵한 역사를 살펴봤다.
- 미들랜드에서 첫발을 내딛다
재규어의 시작은 모터사이클 업체였던 ‘스왈로우 사이드카 컴퍼니(Swallow sidecar company)’였다. 이 업체는 모터사이클에 자동차 바디를 얹었던 제작업체로 빌 라이온스와 월리엄 와슬리의 의해 1922년 블랙펄에 설립됐다.
모터사이클 제작으로 큰돈을 번 스왈로우는 점차 자동차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독자 모델을 출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술력이 부족했던 스왈로우는 스탠다드자동차회사와 손을 잡고 첫 번째 자동차를 출시한다. 바로 재규어의 첫 번째 자동차로 기억되고 있는 ‘SS’다.
1931년 출시된 SS는 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얻었다.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가격마저 합리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재규어의 공동창업자였던 월리엄 와슬리가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곧바로 실린더 헤드 전문가였던 웨슬레이크와 엔지니어링 전문가인 히네스가 합류하면서 재규어는 이제 독자적인 자동차 브랜드로서의 성장을 준비했다.
최정상의 엔지니어가 두 명이나 합류한 재규어는 곧바로 신차 준비에 들어갔다. 히네스는 새로운 섀시를, 웨슬레이크는 엔진의 효율성을, 라이온스는 새로운 차체를 디자인했다. 이렇게 탄생한 차가 바로 1935년 출시된 SS100이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디자인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영국 자동차시장의 루키로 떠올랐다.
SS100으로 큰 성공을 거둔 빌 라이온스는 결국 독자적인 브랜드의 필요성을 깨닫게 됐고, 이에 우아하면서도 민첩한 ‘재규어’를 브랜드로 선택한다. 영국을 대표하는 럭셔리브랜드 ‘재규어’가 탄생한 것이다.
- 한발 앞선 기술력과 독창적인 디자인
그러나 재규어의 앞날은 그리 밝지 못했다. SS100을 출시하자마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독일 전투기들의 폭격으로 산업시설이 파괴되면서 재규어 역시 어려움을 겪었다.
2차 대전이 종전되자 재규어는 미국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재규어의 모델명이었던 ‘SS’를 버리고, 히트작이었던 SS100을 ‘LNW100’을 개명했다.
당시 재규어의 CEO였던 라이온즈는 신 모델 개발에도 나섰다. 당시 개발 중이었던 Mark V가 이었지만, 출력이 낮아 엔진의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에 재규어는 오버헤드 캠 샤프트를 선택해 이를 해결했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신차 개발에 몰두하던 재규어는 마침내 1948년 신차인 XK120을 출시한다. 직렬식 6기통 엔진을 장착한 XK120은 당시 200km/h대의 속도를 돌파해, 영국에서 가장 빠른 차로 공식 기록됐다. 게다가 998파운드(세금포함 1298파운드)에 불과한 파격적한 가격으로 주문이 폭주했다.
재규어는 이후 XK시리즈의 변경모델을 잇따라 발표했고, 계속된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재규어는 스포츠카 제작사가 아닌 자동차제작사였기 때문에 세단의 필요성이 중요해졌다. 이런 이유로 1950년 중반 이후 여러 종류의 세단을 공급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깊은 침체에 빠져있던 재규어는 이런 가운데 라이온스는 또 하나의 걸작을 선보이게 된다. 1961년 제네바모터쇼에서 공개된 E-Type 3.8이 바로 그것이다. XJ시리즈의 원형이 된 이 모델은 자동차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차로 손꼽히고 있다.
라이온즈는 XJ시리즈의 성공 이후 곧바로 다른 세단들을 모두 단종 시키는 결단을 내린다. XJ만 생산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리고 이 결정은 이후 20년 동안 재규어를 흑자로 유지시켰다.
재규어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라이온즈는 재규어만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1966년 영국 자동차회사(이후 BL)에 합병시킨다. 국영기업이 된 셈이다. 이후 1979년에는 국영기업 민영화 정책에 따라 상장이 추진됐다. 1984년 런던증시에 상장된 재규어는 영국 시민들이 대부분 주식을 취득하면서 ‘가장 영국적인 차’로 인정받았다.
- 야성 눈뜬 재규어, 두 번째 질주
재규어는 그러나 또 다른 어려움에 빠졌다. 1980년대 후반 영국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판매량이 감소하기 시작한 것. 조립라인까지 증설했던 재규어로서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결국 1990년 재규어는 포드에 인수됐다. 하지만 최대주주가 바뀌었을 뿐, 재규어는 여전히 잉글랜드 DNA를 그대로 유지했다.
여러 부침이 이었지만, 재규어는 2001년에는 콤팩트 럭셔리 세단인 X-Type을 추가하며 지금의 라인업을 완성했다. XJ와 XK, S-Type, X-Type 등으로 이어지는 재규어라인업이 결국 완성된 것이다.
하지만 재규어는 2007년 또 다시 변신에 나섰다. 이안 칼럼이 디자인한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재규어를 선보인 것이다. 2007년 디트로이트모터쇼에 컨셉트카로 얼굴을 알린 C-XF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컨셉트카는 그 모습 그래도 양산에 나서 같은 해 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XF로 명명된 재규어의 신차는 과거 중후함과 화려함이 강조됐던 귀족적 스타일과 달리 세련되고 야성적인 모습에 날렵한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이런 멋진 모습 때문에 재규어는 단숨에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핫 아이콘으로 등장했다. 이어 2011년 서울 모터쇼에서 XJ, XF, XFR, XKR 등 재규어 풀 라인업을 공개하며 자동차애호가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재규어는 서민형 자동차로 시작했지만, 영국 왕실 의전차량으로 지정될 정도의 발전을 보여준 사례”라며 “가장 고집스러우면서도 가장 혁신적인 모습이 기대되는 브랜드”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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