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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story

[Bently] 영국 혈통 빈티지카의 대표주자, 세계 3대 명차로 올라서다!

 
마이바흐, 롤스로이스, 그리고 벤틀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자동차 브랜드들이다. ‘세계 3대 명차’로 불리는 이 자동차브랜드들은 애호가들 사이에서 소유하지 못하더라도 단 한번은 타보고 싶은 가장 럭셔리한 차로 통한다.

1919년 설립된 이래 올해까지 90년을 이어오고 있는 벤틀리는 영국 빈티지카(1919~1930년 사이에 생산된 영국차량)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다. 한때 ‘달리는 별장’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롤스로이스와 같은 심장을 달며 ‘유사품’ 취급을 받은 적도 있었지만, 98년 이후 폴크스바겐에 인수되면서 두 번째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영국을 대표하는 럭셔리 빈티지카 ‘벤틀리’의 화려하지만, 굴곡진 역사를 되돌아봤다.

- 수입차판매상 Bently Boys, 자동차에 빠지다!

벤틀리의 설립자 웰트 오웬 벤틀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자동차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당시 벤틀리는 자동차에 대해 ‘사람들에게 진흙탕물이나 튀기는 쓸모없는 도구’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벤틀리는 그러나 16세에 영국철도청에 입사하면서 서서히 자동차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이와 관련 영국철도청는 롤스로이스의 창업자인 헨리 롤스의 첫 직장이기도 하다.

처음 5마력짜리 렉스 바이크를 몰았던 그는 1910년 퍼스트카인 중고 라일리V 트윈을 구입하면서 자동차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1912년 동생 호레이스와 함께 프랑스 자동차를 수입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자동차산업에 발을 내디뎠다.

당시 유럽에서는 르망레이스24 등 레이스산업이 관심을 끌기 시작하면서 자동차 대중화가 이뤄지던 시기였다. 여기에 관심을 보인 벤틀리는 자신들이 구입해 팔던 프랑스 DFP 차량의 엔진 피스톤을 알루미늄으로 개조해 경중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게 된다. 개조됐던 DFP 차량은 2마력짜리 엔진을 달았지만, 피스톤 개조를 통해 144km의 속도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세계 1차대전이 발발했고, 벤틀리 형제는 잠시 자동차가 아닌 비행기 엔진 개발에 한눈을 팔기도 한다. 하지만 1919년 전쟁이 끝나자 자신들의 성을 딴 ‘벤틀리’를 창업했다. 영국 빈티지카의 전설이 시작된 것이다.

- 벤틀리와 롤스로이스의 특별한 인연

회사는 1919년 설립됐지만, 정작 벤틀리의 첫 모델인 ‘3리터’는 1921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자동차를 선보인 벤틀리는 유럽 레이스대회를 휩쓸기 시작한다. 초기 모델인 3리터는 1924년과 1927년 르망24 경주에서 우승했으며, 1928년에는 4.5리터가, 1929~1930년에는 6.5리터가 르망24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년대 유럽 레이스 대회를 석권했던 벤틀리였지만, 경제공황의 파고만은 넘지 못했다. 재정적 어려움을 겪어왔던 벤틀리는 1925년 결국 경영권을 백만장자였던 울프 버나트에게 넘겼고, 이 과정에서 공동설립자였던 호레이즌은 회사를 떠났다.

이런 와중에 경제공황이 닥치면서 1931년 버나트마저 자금공급을 중단하자 결국 벤틀리는 경쟁사였던 롤스로이스에 팔리는 신세가 된다. 이 과정에서 창업자였던 찰스 오웬 역시 벤틀리를 떠났다.

롤스로이스의 그늘 아래로 들어온 벤틀리는 이후 롤스로이스의 엔진과 섀시를 공유하게 된다. 회사가 넘어간 뒤 처음 출시된 3.5리터에는 롤스로이스의 엔진이 탑재됐으며, 섀시 역시 따로 판매됐다.

또한 벤틀리에서 생산된 S시리즈, T시리즈 등은 각각 엔진을 공유하며 롤스로이스의 상응모델로 출시됐다.

벤틀리와 롤스로이스의 교차조합은 스포츠성이 강했던 벤틀리에게 편안한 승차감을 제공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지만, 벤틀리와 롤스로이스의 구별을 어렵게 하는 부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결국 일련의 과정을 통해 벤틀리의 색깔은 희미해져 갔고 인기 역시 시들해져 갔다.


- ‘Mulsanne’ 통해 부활, 빈티지카 전성시대 열어

그러나 벤틀리는 여전히 빈티지카의 제왕이었다. 1980년 롤스로이스가 벤틀리의 독립성을 주기로 결정하자 벤틀리의 판매량은 서서히 늘기 시작했다.

특히 벤틀리가 ‘물산느(Mulsanne)’를 출시하면서 롤스로이스의 판매량마저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롤스로이스에 인수된 후 자체적인 색깔을 잃으면서 몰락했던 벤틀리가 부활에 성공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1988년에는 모기업이었던 롤스로이스가 BMW와 폴크스바겐에 인수되면서 벤틀리는 또한번의 기회를 잡게 된다. 유럽 최대 자동차회사인 폴크스바겐이 BMW와의 경쟁을 물리치고 벤틀리를 인수했기 때문이다. 롤스로이스는 이후 BMW에게 넘어갔다.

벤틀리는 현재 폴크스바겐그룹에서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고 있다. 그나마 프레임을 공유하는 폴크스바겐의 페이튼 정도가 벤틀리에 비견되고 있지는 하지만, 명성 면에서는 여전히 한 수 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롤스로이스와 함께 영국 전통 럭셔리 메이커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벤틀리. 잃어가던 자신의 색깔을 다시 찾은 벤틀리의 화려한 질주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snikers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