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1일’.
세계 최대 자동차그룹으로 불리는 GM(General Motors)그룹에 있어 이날은 그야말로 치욕스런 날이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했던 GM이 이날 ‘파산’을 통해 새로운 ‘newGM’으로 출범한 날이기 때문이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GM은 30여개의 자동차브랜드를 갖고 있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자동차그룹이다.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GM이지만, 사실 GM이란 브랜드로 생산되는 차량은 단 한 대도 없다. 회사명이 GM이지만, 생산하는 자동차는 모두 각자의 브랜드로 판매되고 있어서다.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캐딜락, 시보레, 홀덴. 새턴, 오펠 등이 GM이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다.
왜 GM은 자기 이름으로 차량을 만들지 않을까. 그 이유를 GM의 100년 역사를 통해 알아봤다.
- 백만장자 듀런트, 뷰익 인수하며 GM 설립하다
GM의 시작은 1904년 미국 미시간주에서 시작됐다. 당시 미시간주 플린트시에서 마차공장을 운영하고 있던 백만장자 월리엄 듀런트는 쓰러져가던 자동차회사인 ‘뷰익(Buick)’을 사들였다. 듀런트는 당시 미시간주 주지사의 손자로, 30대 초반에 마차를 팔아 백만장자가 됐다.
듀런트가 인수할 당시 뷰익은 연간 생산대수가 28대밖에 안될 정도로 작은 회사였다. 듀런트는 구멍가게 수준이던 뷰익을 4년 만에 연간 생산대수 6,200여대의 회사로 키워낸다. 이는 당시 미국 시장점유율 1위였던 포드를 앞지른 규모다.
뷰익을 미국 1위 자동차회사로 키워낸 듀런트는 1908년 미국 최초의 자동차회사였던 ‘올즈모빌(Oldsmobile)’을 인수한다. 그리고 뉴저지로 본사를 옮기고 회사 이름을 ‘제너럴모터스(GM)’로 변경했다. GM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뷰익과 올즈모빌로 시작한 GM은 이후 1910년까지 단 2년 만에 25개의 회사를 인수하는 괴물식성을 보여준다. 대부분 부품업체였지만, 이중에는 현재 GM의 최고 브랜드인 ‘캐딜락’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급하게 먹은 밥은 체하는 법. 1910년 모기업이었던 뷰익이 판매부진에 빠지면서 GM은 자금압박을 받게 된다. 결국 GM을 설립했던 듀런트는 금융권에서 자금지원을 받는 대신 경영권을 내놓고, 회사를 떠났다.
그러나 듀런트는 GM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다. 한 레이싱 자동차회사와 손을 잡은 듀런트는 ‘시보레(Chevrolet)’를 창업했고, 490, 베이드 그랜드, 모얄메일 등이 성공을 거두면서 재기에 성공한다. 이어 듀런트는 시보레의 주식과 GM의 주식을 맞바꾸는 빅딜을 통해 다시 GM의 주인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듀런트의 인수합병 기질은 여전했다. 1916~1920년까지 14개의 잇달아 인수한 것. 이로 인해 다시 회사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다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GM을 설립자 듀런트는 이후에도 자동차회사를 설립하며 재기에 나섰지만, 이어 찾아온 대공황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파산했다. 하지만 그가 세운 GM은 뷰익과 시보레를 주축으로 강인하게 살아남았다.
- 세계로 뻗어나가는 GM, 미국을 상징하다!
GM은 이후 피엘 듀폰이 대표를 맡았다가 23년 알프레드 슬론을 전문경영인으로 영입한다. 다분히 현실적인 사업가였던 슬론은 57년까지 대표직을 맡으면서 GM을 세계 1위의 자동차제국으로 끌어올린다.
슬론이 대표이사가 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미국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일이었다. 당시 미국은 ‘모델 T’를 히트 시킨 포드가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던 때였다. 당시 GM은 20%도 되지 않는 점유율이었지만, 슬론이 국내시장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37년에는 42%를 기록, 포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슬론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사고를 갖춘 경영인이었다. 효율성을 강조한 포드가 ‘누구나 자동차를 가질 수 있게 하자’는 캐치프레이드 아래 경영을 펼쳤다면 슬론이 이끌던 GM은 자동차 소유주가 갖는 차에 대한 자부심과 라이프스타일에 주목했다.
이에 GM은 가격, 다지인, 성능 등 다양한 차종을 양산했고, 같은 모델의 차량이라도 해마다 다른 모습으로 출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슬론은 해외로 눈을 돌리기도 했다. 1925년 영국의 박스홀(Vauxhall), 1929년 독일의 오펠(OPEL), 1931년 호주의 홀덴(Holden)을 인수 또는 설립하고, 공산화 이전에 1928년에 중국에 ‘GM차이나’를 설립하기도 했다. 또한 일본에도 자동차부품회사를 설립해 운영했으나, 2차대선이 발발하면서 생산을 포기했다.
이 같은 슬론의 세계화 전략은 종전 이후 큰 성공을 이루게 된다. 특히 50년~60년대에는 GM 산하의 메이커들이 전대미문의 히트차량들을 속속 발표하면서 GM은 미국을 상징하는 세계 최대의 자동차제국으로 발돋움했다.
당시 GM에서 출시됐던 차량들은 캐딜락 엘도라도, 뷰익의 르세이버, 시보레 코르벳 등이었다. 이중 테일핀으로 유명했던 캐딜락 엘도라도 엘비스 프레슬리와 마를린 먼로의 애마로도 잘 알려졌으며, 존 F. 케네디 저격 사건 당시 의전차량으로 유명하다.
- 유럽과 일본의 도전으로 위기 봉착한 GM
50~60년대 황금기를 보냈던 GM은 60년대 중반 이후부터 시련을 겪게 된다. 미국시장에 유럽 메이커들이 진출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메이커들이 소형차를 필두로 성능 경쟁을 펼치면서 대형차 위주로 경영을 해왔던 GM은 큰 타격을 받았다. 여기에 70년에는 일본계 자동차브랜드들이 대거 미국시장에 진출한다.
이런 가운데 오일쇼크가 일어나면서 GM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직면했다.
이를 해결하게 위해 오펠과 일본의 이스즈, 한국의 새한자동차와 합작으로 ‘제미니’를 선보이는 소형차 프로젝트를 잇딸아 선보였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다. 여기에 ‘새턴’이란 소형차 브랜드를 발표했지만, 역시 실패한다.
GM이 이처럼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일본과 유럽의 메이커들은 속속 미국시장에 상륙했고, 결국 1980년 GM은 7억6,000만달러는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며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결국 GM은 적자해결을 해결사를 찾았고, 80년 로저 스미스가 최고경영자로 선택되면서 혹독한 구조조정에 돌입하게 된다.
새롭게 CEO가 된 로저는 일단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미국 내 공장의 15%에 해당하는 20여곳의 공장을 폐쇄했고, 고용인원의 1/4에 달하는 16만명을 해고했다. 이어 86년에도 공장 11곳의 문을 닫고, 3만여명의 직원을 재차 해고했다.
살벌한 구조조정은 89년 42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하면서 성공하는 것처럼 비춰졌다. 하지만 또 다른 난제에 직면하게 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숙련공들이 회사를 떠나면서 자동차제작과정이 허술해졌고, 이것은 GM의 품질하락을 부르게 했다. 품질이 하락한 GM 차량들은 잔고장이 많아졌고, 소비자들은 GM에 부정적인 인식을 주면서 결국 점유율이 하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품질이 우수한 일본차들이 미국상륙에 잇달아 성공하면서 GM은 안팎에서 공격을 당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 ‘서브프라임’에 좌초된 GM, 뉴GM으로 새출발
GM은 1992년 위기극복을 위해 유럽본부의 잭 스미스를 CEO로 선출한다. 잭은 취임하자마자 자동차 생산과 관련 없는 사업을 모두 매각했고, 이를 통해 확보한 자금을 마케팅에 투입했다. 또한 해외시장 확장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GM의 부활에 노력했다.
그러나 인력감축은 여전히 계속됐다. 차이가 있다면 아웃소싱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이 차이였다. 이는 결국 노조와의 마찰을 불러왔고, 결국 GM의 불안요소로 지적됐다.
마케팅에 집중한 잭의 노력은 93년 25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하면서 결실을 맺는다. 하지만, 인력감축에 따른 노조와의 마찰은 ‘파업’을 불러왔고, GM은 제자리를 맴돌게 됐다.
어려움을 겪던 GM은 2000년대 들어 제품개발과 디자인으로 눈을 돌리면서 새로운 GM의 모습을 갖춰가게 된다. 하지만 지난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가 미국에서 시작되면서 결국 파산에 이르게 된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미국 국내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판매에 제동이 걸렸고, 노조와의 계속된 마찰이 결정타가 됐다.
정부의 자금지원을 기다렸던 GM은 결국 파산을 선택했고, 6월1일 파산신청을 한 GM은 현재 '뉴GM'이란 이름으로 재기에 나서고 있다.
100년 역사 동안 미국을 상징했던 세계 최대의 자동차그룹 GM. 현재 파산신청 이후 최악의 시련을 겪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 최대의 자동차그룹을 유지하고 있는 GM의 질주가 기대된다.
snikers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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