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 자동차메이커는 어디일까?
대부분의 이들은 GM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반만 맞은 정답이다. GM그룹이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그룹이 맞긴 하지만, 정작 GM이라는 자동차브랜드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GM그룹의 대표적인 자동차메이커는 무엇일까? 바로 뷰익(Buick)이다. 뷰익은 르세이버라는 걸출한 모델을 통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현재의 뷰익은 모기업인 GM의 파산 이전부터 그다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일본 자동차브랜드들이 미국대륙을 석권해가는 동안 뷰익은 사실상 이에 대항할만한 자동차모델을 선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뷰익은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자동차메이커다. 바로 ‘팍스아메리카나’를 상징하는 전통성을 뷰익과 모기업인 GM그룹에 있기 때문이다.
내리막길을 걷고 있지만, 세계 최고의 자동차메이커였던 뷰익을 알아봤다.
- 공장 화재부터 경영권분쟁까지…트러블메이커 뷰익
“더 좋은 자동차가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뷰익이 만든 것일 것이다.(When Better Automobiles are built, Buick will built them)”
세계 최대의 자동차그룹으로 잘 알려진 GM그룹의 대표 브랜드 뷰익은 선박엔진 제작회사를 갖고 있던 데이빗 뷰익에 의해 1900년 설립된 유서 깊은 회사다. 데이빗은 우연한 기회에 자동차를 접하고는 이 사업에 진출했고, 엔지니어였던 월터 마(Walter Marr)를 만나 오버헤드 밸브 엔진의 모델 A를 1903년 출시하면서 자동차사업에 진출했다.
그러나 뷰익은 회사 출범 초기부터 큰 재앙을 겪게 된다. 차량 출시를 앞두고 공장에 화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투자자였던 브리스코 형제로부터 자금투자를 받은 데이빗은 회사명을 Buick Motor Co.로 변경한 뒤 1904년 2기통 엔진을 얹은 모델 B를 발표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하지만 재앙은 화재 만이 아니었다. 자금투자를 했던 브리스코 형제가 설립자였던 데이빗 간의 불화를 이유로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제임스 파이팅에게 넘기면서 회사가 어수선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월리엄 듀런트(GM그룹 설립자)가 뷰익에 대한 투자에 나서면서 뷰익은 경영권은 안정되기 시작했다. 뷰익을 인수한 듀런트는 이듬해인 1905년 모델 C를 발표한 뒤 생산량을 폭발적으로 늘리면서 미국 최대의 자동차회사였던 포드사에 이어 미국시장 2위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 폭발적으로 성장한 뷰익, 미국의 상징이 되다!
뷰익의 새주인이 된 듀런트는 뷰익을 기반으로 1908년 미국을 대표하는 GM그룹을 세운다. 하지만 정작 듀런트는 경영악화에 대한 책임을 지고 뷰익과 GM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그러나 뷰익은 GM그룹 대표 브랜드로 정착하면서 성장가도를 질주하기 시작한다. 잇따라 신기술을 적용한 차량을 발표하는가 하면, 1923년에는 백만대째 차량을 생산하는 등 미국의 상징으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특히 뷰익은 1936년부터 생산하고 있는 전 차량모델을 스페셜(Special) 센츄리(Century) 로드마스터(Roadmaster) 리미티드(Limited) 버전 등으로 나눠 생산하면서 소비자들에게 환호를 받았고, 1939년에는 방향지시등을 기본사양으로 장착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로 세계 자동차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뷰익을 상징하는 수직형 라디에이터 그릴을 디자인했으며, 하드탑 컨버터블을 개발해 뷰익만의 색깔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뷰익은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차량으로 사랑받기 시작한다. 1953년 발표한 스카이락이 큰 히트를 친 후, 1959년 뷰익은 아직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르세이버(LeSabre), 인빅타(Invicta) 일렉트라(Electra) 등을 선보이며 가장 미국적인 차량이란 평가를 받았다.
한편 이 시기에 뷰익은 방패형 로고를 디자인해 상징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 80년대부터 추락 시작한 뷰익, 돌파구 모색 중
고속성장을 지속하며 전세계를 자사의 차량으로 덮어버릴 것 같았던 뷰익의 질주는 70년대 들어서면서 주춤하기 시작했다. 63년 클래식한 디자인의 리비에라(Riviera)를 선보이면서 사랑을 받았지만, 70년대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차체가 줄어들면서 매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뷰익은 ‘썩어도 준치’였다. 80년대 뷰익이 추락을 하고 있을 당시 영화계에 ‘복고 바람’이 불면서 뷰익의 인기가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특히 88년 아카데미 대상을 받았던 레인맨에 49년형 뷰익 로드마스터 컨버터블이 등장하면서 판매량이 급증했다.
그러나 특별한 히트모델을 내놓지 못했던 뷰익은 영화계의 관심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다시 추락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GM의 대표 브랜드란 간판 역시 한식구였던 ‘시보레’에 넘겨줘야 했다.
미국 자동차 역사에서 큰 획을 차지하고 있는 뷰익. 설립이후 최근까지 4,000만대 가까운 차량을 생산한 뷰익은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미국을 대표하는 차량으로 인식되고 있다.
snikers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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