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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story

[Cadillac] 부의 상징에서 미국의 아이콘으로 변신한 방패엠블럼


자동차왕국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메이커는 어디일까?

이 질문에 쉽사리 답을 하기란 쉽지 않다. 자동차왕국이란 별명처럼 미국에는 수많은 자동차브랜드들이 있고, 이런 상황에서 대표 메이커를 선택하기란 어려운 결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답은 비교적 쉽게 나온다. 미국 1위의 자동차그룹인 GM의 간판 메이커를 떠올리면 되기 때문이다. 바로 캐딜락(Cadillac)이다.

캐딜락은 미국 자동차메카인 디트로이트를 1701년 처음 개척한 프랑스 귀족인 탐험가 모스 캐딜락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캐딜락 설립자인 헨리 마틴 리랜드(Henry Martin Leland)가 당시 포드가 운영했던 디트로이트 모터스를 인수하면서 ‘캐딜락 오토모빌 컴퍼니’(Cadillac Automobile Company)를 설립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탄생한 캐딜락에는 GM그룹의 간판 메이커로 성장하면서 미국에서 ‘부의 상징’이란 명성을 쌓아오고 있다. 특히 프랑스 귀족 가문의 상징인 왕관과 방패모양의 엠블럼은 라디에이터그릴의 디자인에 사용되면서 캐딜락의 럭셔리를 더욱 빛내주고 있다.

- 부품회사 캐딜락, GM의 대표 디비전이 되다!

미국의 럭셔리 중형세단의 대명사로 불리는 캐딜락은 당초 부품회사에서 출발했다. 설립자였던 헨리 마틴 리랜드는 자동차 부품을 만들어 포드사에 납품하는 회사를 설립했는데, 이 회사가 바로 캐딜락이었다.

부품업체에 불과했던 캐딜락이 자동차회사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포드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당시 헨리 포드가 운영했던 디트로이트모터스가 재정난에 빠지면서 이 회사를 캐딜락이 인수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동차를 직접 생산하게 된 캐딜락은 1902년 모델 A를 선보이면서 자동차업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잔고장 없는 차란 평판을 받았던 캐딜락은 1908년 영국왕립자동차클럽(RAC)에서 ‘토마스 드와 트로피’(Thomas Dewar trophy)를 수상하면서 유럽에 진출한다.

그리고 같은 해 설립자였던 리랜드가 GM그룹 설립자였던 월리엄 듀런트에게 5,600만달러를 받고 회사를 매각하면서 캐딜락은 GM그룹의 됐다. 당시 리랜드는 캐딜락 매각의 조건으로 GM그룹 대표 메이커 대우를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캐딜락은 1912년 ‘드와’ 상을 또 한번 더 받는다. 전기식 셀프스타터(시동장치)를 장착한 모델30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델코(Delco)가 개발한 이 장치는 이후 전세계 자동차회사들이 모두 장착하는 장치가 됐다.

그러나 설립자였던 리랜드는 1915년을 끝으로 캐딜락과 결별하게 된다. 1차대전 중 비행기 엔진 제작을 하려 했던 리랜드와 자동차 생산을 고집하는 GM그룹 듀런트가 대립하면서 결국 리랜드가 회사를 떠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립자의 공백에도 캐딜락은 GM 디비전의 간판으로 성장하면서 세계자동차역사의 한획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한다.

- ‘테일핀’의 엘도라도, 캐딜락 전성시대를 열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캐딜락은 강력한 경쟁자를 만나게 된다. 바로 포드사의 링컨(Lincoln)이다. 링컨과 캐딜락은 이후 미국 대통령의 의전차량으로 각각 선택되면서 지금까지도 경쟁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캐딜락의 전성시대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면서 찾아왔다. 링컨이 침체기를 맞은 가운데, 백악관 의전차량으로 선택되면서 할리우드 스타들 사이에서 캐딜락 컨버터블을 소장하는 것이 유행이 됐기 때문이다.

특히 캐딜락은 ‘테일핀’ 디자인을 선보이면서 미국과 세계자동차시장에 캐딜락 열풍을 주도했다. 테일핀 디자인은 1948년 60스페셜 시리즈(Series 60 special)에서 처음 소개됐는데, 비행기 꼬리 날개를 닮은 것이 특징이다. 테일핀은 1959년형 엘도라도 세빌(Eldorado Seville)에까지 적용되며 캐딜락을 미국의 대표 아이콘으로 끌어올렸다.

캐딜락은 그러나 1972년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침체기를 겪게 된다. 물론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 자동차회사들이 모두 오일쇼크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대형차 위주로 라인업이 짜있던 캐딜락은 오일쇼크로 인해 어마어마한 타격을 받았다.

이를 극복하고자 1975년 소형 세빌 4도어 세단을 발표하고, 1980년에는 디젤엔진을 적용한 뉴 세빌을 선보인다. 그러나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면서 캐딜락의 침체기는 이어졌다.

어려움을 겪던 캐딜락은 1987년 이탈리아의 유명 자동차디자인그룹인 피닌파리바가 디자인한 2인승 컨버터블 앨란트(Allante)를 소개하고, 1992년 엘도라도와 세빌을 재디자인하며 부활시킨다. 이 모델들은 당시 ‘올해의 차’로 선정됐다.

- 남성적이고 직선이 살아난 캐딜락, 중흥기 오나?

테일핀으로 세계적인 명차 반열에 오른 캐딜락은 이후 별다른 글로벌 히트작을 선보이지 못한 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80~90년대 일본차들이 미국시장에 진출하면서 캐딜락의 명성은 더욱 떨어진 상태다.

이런 가운데 캐딜락은 2000년대 들어 중흥기를 맞고 있다. 블랙버스터 영화 <매트릭스>에 등장시킨 캐딜락 STS가 높은 관심을 끌기 시작하면서 중흥기를 맞고 있어서다. STS는 남성적이면서도 직선이 잘 살아난 디자인이 특징적이며, 최근 자동차소비자들 사이에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미국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인해 모기업인 GM그룹이 청산절차를 밟으면서 중흥시대를 위한 캐딜락의 질주는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혁신적인 디자인 하나로 전 세계에 테일핀 광풍을 몰고 왔던 캐딜락. 벤츠, 롤스로이스와 함께 세계 3대명차 중 하나로 손꼽히는 캐딜락. 하지만 현재는 모기업의 어려움으로 자신들도 침체에 빠져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에도 탐험가 이름을 딴 캐딜락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세계적 표준화를 만들자’는 캐딜락의 캐치프레이즈처럼 캐딜락이 세계적인 자동차의 표준을 보여줄 날이 기대된다.

snikers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