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ARstory

[ISSUE MOTOR-SPORTS 01] 외면받던 모터스포츠, 태동을 시작하다!


[해당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35호(2013년 8월호)에 게재됐습니다]



‘힐링의 스피드한 진화?’

재계가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레저산업을 주목하고 있다. 아웃도어 열풍에 이어 캠핑열풍까지 불면서 레저산업이 차세대 산업트렌드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이에 각 기업들의 기획팀과 신사업부서에서는 새로운 레저트렌드를 읽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모터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 단순히 이동수단에 불과했던 자동차가 이제는 개성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진화하면서 모터스포츠 역시 속도만 즐기는 것이 아닌, 가족과 함께 나들이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되고 있어서다.  


- 주목받기 시작한 모터스포츠산업

“부릉~~~부릉~~~!”

햐안색 라인위에 정차된 머신들이 몸을 떨며 가쁜 숨을 내쉬고 있다. 곧이어 깃발이 올라가고 동시에 라인 위에서 질주본능을 억누르고 있던 머신들이 곧바로 트랙 위로 쏟아져 나간다. 코너링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브레이크를 잡으며 아스팔트 위에 스키드 마크(급정거 과정에서 생기는 타이어 자국)를 남기고, 타이어 타는 냄새와 굉음이 주변으로 퍼져간다. 

지난 7월6일 강원도 인제 스피디움에서는 CJ수퍼레이스 3차전이 개최됐다. 등급별로 진행되는 이날 경기에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관객들이 대거 등장했다. 바로 가족단위 관람객이다. 이들은 인근 내린천으로 래프팅을 왔다가 경기를 보러 왔다고 말했다.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모터스포츠’가 최근 새로운 레저 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과거 주행 중에 발생하는 굉음과 과도한 튜닝으로 인해 ‘폭주게임’이란 오해를 받기도 했던 모터스포츠가 이제는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레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서다. 

대기업들 역시 모터스포츠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은 물론, 투자에도 나서고 있다. 국내 최대 자동차기업인 현대자동차그룹이 글로벌 모터스포츠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독일에 전담 법인을 따로 만들었으며, 의류업체들과 자동차 관련 기업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 글로벌 5위 자동차 생산국의 ‘안타까운’ 현실

50년이 넘는 자동차 역사에서 모터스포츠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야말로 빈약하다. 해외 모터스포츠 대회에 후원사 혹은 파트너로 나설 때도 있었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모터스포츠산업은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한창희 더아이오토 편집장은 “국내 모터스포츠 대회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사실상 2011년 F1 그랑프리 대회를 유치한 이후부터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세계 3대 스포츠축제로 손꼽히는 F1을 유치하고 나서야 비로서 모터스포츠산업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는 설명이다. 

국내 모터스포츠산업의 역사가 짧은 만큼, 여건은 여전히 열악하다. 모터스포츠대회를 열 수 있는 경기장은 국내에 전남 영암 F1 서킷을 비롯해 용인 에버랜드 내 스피드웨이, 태백 레이싱파크, 그리고 올해 6월 강원도 인제 스피디움 등 단 4곳에 불과하다. 안산에 레이싱트랙은 체육시설업으로 등록돼 상업성을 띤 대회를 개최할 수 없다. 

이뿐 아니다. 모터스포츠대회가 열리는 경기장 주변은 그야말로 허허벌판이다. 관람객들이 전국 각지에서 최소 3~6시간을 소비하고 와도 경기를 보고 나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당연히 가족단위 관람객들의 발길이 뜸해질 수밖에 없고, 모터스포츠대회의 관람석은 텅 비어있는 경우가 많다. 

모터스포츠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 역시 여전히 낯설다. 굉음을 내며 위협운전을 하는 ‘폭주족’과 모터스포츠 선수들을 동일시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실제 모터스포츠 동호회 회원들 일부는 불법 튜닝카를 몰고 엄청난 속도로 도로를 질주해 다른 운전자들에게 위협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모터스포츠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법령’이다. 국내법상 제작사에서 생산된 차량을 개조하려면 해당 지자체장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구청을 방문해 차량개조신청서를 작성한 후 ‘승인’을 받아야 튜닝이 가능하다. 승인을 받지 않은 채 라이트의 전구하나도 내맘대로 바꾸지 못하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모터스포츠 산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튜닝산업은 제대로 된 성장을 할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100조원 규모를 가진 튜닝시장에서 국내 브랜드가 한 하나도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 ‘폭주’ 오명에서 新성장동력으로 환골탈태

상황이 이렇다보니 업계에서는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규제완화와 튜닝산업에 대한 육성책을 요청했다. 남태화 모터스포츠 전문기자는 이와 관련 “세계에서 자동차를 다섯 번째로 많이 생산하는 나라가 연관 산업인 튜닝과 관련해서는 볼모지에 가깝다는 것은 아이러니”라면서 “규제를 완화해야 연관 산업인 튜닝업체들이 활성화되면서 국내 자동차 메이커들 역시 글로벌 브랜드에 뒤지지 않은 훌륭한 성능의 차를 생산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일까. 업계의 목소리를 애써 외면해왔던 정부가 이번에는 ‘튜닝산업’과 ‘모터스포츠 산업’을 육성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취임 후 ‘정책 비즈니스 아이디어(BI) 콘테스트’에서 두 산업이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산업부는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창조경제’ 모델에 가장 부합한 산업으로 자동차튜닝과 모터스포츠산업을 후보에 올려놓고 있다. 

이미 다른 부서들과의 정책협의도 진행 중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국토교통부,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튜닝과 모터스포츠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모터스포츠산업에 대한 관심을 내비치면서 대기업들 역시 행보를 빨리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모터스포츠산업을 전담할 법인을 해외에 설립한 뒤, 전문가들을 영입해 내년부터 WRC(월드랠리챔피온십)에 참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내 대회가 아니라는 점이 아쉽지만, 그래도 3대 글로벌 모터스포츠대회 중 하나에 참여한다는 소식에 관련업체들과 전문가들은 반기는 분위기다. 

이뿐 아니다. EXR, 블랙야크 등 의류업체들이 모터스포츠산업의 꽃으로 불리는 레이싱팀에 대한 후원을 결정했다. EXR은 연예인이자 프로 레이서인 배우 류시원씨를 감독으로 ‘EXR팀’을 운영 중이며, 블랙야크는 한국GM의 ‘쉐보레’ 레이싱팀에 대한 후원을 최근 결정했다. 


- 새로운 레저산업 vs 마니아를 위한 소수의 문화

정부와 대기업들이 모터스포츠산업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면서 재계 일각에서는 ‘모터스포츠산업’이 캠핑에 뒤를 이을 새로운 레저산업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가족단위 관람객의 숫자가 정확하게 나오지 않아 아직까지 확신을 갖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트렌드세터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모터스포츠대회에 대한 관심 역시 증폭되고 있어서다. 실제로 지난 7월6일 강원도 인제 스피디움에서 열린 CJ수퍼레이싱 대회의 경우 가족단위 관람객이 부쩍 늘어났다고 대회 관계자는 귀띔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그러나 모터스포츠산업에 대해 여전히 미지근한 모습이다. 가족이 함께 가서 즐기기에는 여전히 놀거리, 볼거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모터스포츠산업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높다. 인제 스피디움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시간의 문제일 뿐, 모터스포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서서히 높아지고 있다”면서 “모터스포츠산업은 먼저 법령 등 규제가 완화되고, 중견기업들이 참여해야 새로운 레저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서서히 예열을 시작한 모터스포츠산업. 아직 많은 이들이 외면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모터스포츠산업의 태동기는 이미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