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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story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의 영토쟁탈전

[ 해당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4월호에 게재됐습니다] 


“한국 자동차 시장을 장악하라!”

침체됐던 국내 자동차 시장이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국내업체들과 수입차업체들이 잇따라 신차를 출시하면서 치열한 판촉전을 펼치고 있어서다. 

이런 가운데, 국내 자동차시장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한국-일본-독일 브랜드들이 과거와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주력라인업에 집중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경쟁업체들의 우위를 보이고 있는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현대기아차는 일본브랜드가 장악하다시피 한 하이브리드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일본업체들은 독일브랜드들이 선점한 디젤 세단을 선보였다. 독일브랜드들도 국내 완성차업체들의 점유율이 높은 4000만원대 이하 시장을 노린 소형차종들을 잇따라 공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 자동차업계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내수-일본-독일 브랜드들의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됐다”면서 “내수시장과 수입차시장의 경계는 이제 무너졌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자동차시장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글로벌 완성차메이커들의 영토쟁탈전을 살펴봤다. 


- 현대차는 하이브리드, 한국GM은 디젤로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지난해 12월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대거 출시하며 시장을 선점한 일본브랜드들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현대차는 지난해 11월 그랜저 하이브리드 출시에 이어, 12월에는 K7과 K5의 하이브리드 버전을 선보였다. 이에 앞서 출시했던 아반떼 하이브리드와 쏘나타 하이브리드까지 포함하면 현대기아차는 경차와 소형차, 대형차를 제외한 전 라인업에서 하이브리드 모델을 출시한 것이다. 

새롭게 선보인 하이브리드 모델 중 그랜저와 K7는 16km/L에 달하는 높은 효율성과 경쟁력 있는 가격대를 갖추고 있어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1월에만 1642대의 하이브리드 모델을 판매했으며, 기아차도 같은 기간 832대를 판매했다. 

업계에서는 현대기아차그룹의 하이브리드 라인업 강화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높은 효율성을 갖춘 친환경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하이브리드 시장에 경쟁력 있는 신차들을 대거 출시했기 때문에 일본 업체들이 장악하다시피 한 하이브리드 시장의 주도권을 본격적인 경쟁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한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일본업체들이 선점했던 하이브리드 시장에 큰 변화가 올 것”이라며 “효율성에 편의성,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만큼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GM은 독일차 업체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디젤 세단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 3월 한국GM의 대표 중형세단인 말리부의 디젤 모델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한국GM은 “말리부 디젤은 독일 오펠사의 2.0 디젤엔진과 일본 토요타 계열의 아이신 2세대 6단 자동변속기를 파워트레인으로 사용하고 있다”면서 “독일수입차 브랜드들이 장악하고 있는 디젤 세단 시장을 넘어 중형세단의 트렌드를 주도하겠다”고 자신했다. 


- 디젤 스포츠세단 내놓은 인피니티

한때 국내 수입차 시장의 최강자였던 일본차는 디젤 엔진을 무장한 독일 업체들에게 주도권을 내준 후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그나마 토요타를 비롯한 렉서스가 하이브리드 차량들을 선보이며 선전했지만, 독일 브랜드의 질주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난 1월 프리미엄 브랜드인 인피니티가 디젤 엔진을 얹은 Q50을 국내에 출시했다. 독일 업체들이 선점한 프리미엄 디젤 세단 시장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수입차업계에 따르면 디젤 세단은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시중에 팔리고 있는 수입차 2대 중 1대 이상이 디젤 모델일 정도. 특히 디젤 승용 모델에 집중하고 있는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인 BMW, 벤츠, 폴크스바겐, 아우디 등이 수입차 업계 1~4위를 독차지하고 있다. 

반면 인피니티는 그동안 가솔린 엔진을 사용한 퍼포먼스 위주의 차량들을 국내에 들여왔다. 주행성능 면에서는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 대비 흠잡을 데가 없었지만, 가솔린 엔진을 사용하는 만큼 효율성이 낮아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아왔다. 

인피니티 역시 이런 점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 2012년 주력모델인 M라인업에 디젤 모델을 추가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경주했다. 그 결과 디젤 엔진을 얹은 Q50을 국내에 내놓은 것이다. 

수입차업계에서는 인피니티의 이 같은 움직임에 긍정적인 반응이다. 한창희 더아이오토 편집장은 “높은 효율성을 갖춘 디젤엔진을 앞세워 수입차업계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독일차 업체들에게 인피니티 Q50은 강력한 경쟁자가 부상하게 될 것”이라며 “높은 효율성과 강력한 주행성능에 화려한 편의사양까지 갖추고도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어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 된다”고 말했다. 

혼다 역시 디젤 엔진을 얹은 신차를 국내에 출시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혼다코리아 정우영 사장은 “주력 SUV모델인 베스트셀링카 CR-V의 디젤 모델이 준비되는 데로 국내에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CR-V는 혼다의 주력 SUV모델로, 국내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었던 모델인 만큼, 디젤 엔진을 얹은 신차가 가격경쟁력만 확보한다면 수입차 시장의 큰 변화를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하향 진격 

디젤 세단을 전면에 내세우며 수입차 시장의 주도권을 쥔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4000만원 이하 소형차를 잇달아 내놓으며 국내 소형차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중‧대형차 위주의 프리미엄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만큼, 소형차 시장에 진출해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프리미엄 세단의 대명사로 불리는 메르세데스-벤츠(이하 벤츠)가 대표적이다. 벤츠는 지난해 7월 소형차 라인업인 A-class 출시에 이어 올해 1월에는 프리미엄 소형 쿠페 CLA를 출시했다. 작지만 화려하고 날렵한 디자인에 벤츠 특유의 고급스러움이 묻어나는 모델이다. 

아우디 역시 지난 1월 소형 프리미엄 디젤 세단인 A3를 국내에 선보였다. 아우디 특유의 역동적인 주행성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가격은 4000만원대 이하(3750만원)로 책정돼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아우디 관계자는 “파격적인 가격을 책정한 만큼 수입차의 대중화에 기여할 전략적 모델로 평가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BMW 역시 지난해 1시리즈에 이어 지난 3월 럭셔리 소형 쿠페인 2시리즈를 국내에 전격 출시했다. 국내에는 M패키지 모델만 출시된 관계로 가격이 높지만(5190만원), 해치백 스타일의 1시리즈의 가격대가 3000만원대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한 수입차 업체 관계자는 “높은 효율성과 실용성을 겸비한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잇달아 낮은 가격대의 신차들을 출시하면서 내수완성차업체의 중형세단을 구매하던 소비자들의 발길이 수입차로 몰리고 있다”며 “앞으로도 가격경쟁력을 갖춘 모델들이 대거 출시될 것으로 예상돼 수입차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전기차 시장은 이미 격전 중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의 치열한 시장선점 경쟁은 차세대 먹거리로 유력한 전기차 시장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국내 전기차 시장을 놓고 한국과 일본, 독일 업체들이 벌써부터 과열경쟁 양상을 보이고 있어서다. 

현재 국내에 출시된 순수전기차는 기아차의 레이, 한국GM의 스파크, 르노삼성의 SM3 ZE 등이 있다. 지난 3월에는 기아차가 다목적 CUV 쏘울의 전기차를 선보이기도 했다. 반면 수입차 업체들은 아직까지 잠잠한 모습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차는 보조금이 지급되기는 하지만, 충전시설 미비와 주행안전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의문이 해소되지 않아 아직까지 본격적인 경쟁이 펼쳐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올해 BMW가 순수전기차를 국내에 출시할 계획이고, 일본 토요타와 닛산, 혼다 역시 시장이 조성되면 곧바로 들여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서로의 안방을 놓고 치열한 격전을 펼치고 있는 한국‧일본‧독일의 자동차메이커들. 한해 150만대 이상이 판매되는 대한민국 자동차시장의 트렌드를 누가 잡을지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