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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ving Review

[Bentley] 오직 한대 뿐인 '나만의' Vintage Maestro

< 해당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4월호에 게제됐습니다 >


2억8600만원!

서울 시내 웬만한 중형 아파트 가격과 맞먹는 자동차가 있다. 영국 혈통의 수제 럭셔리카 ‘벤틀리’다. 벤틀리는 같은 영국 출생인 롤스로이스와 함께 최고가를 자랑하는 초호화 럭셔리카 시장의 양분하고 있다. 또한 오너가 직접 운전하는 방식의 차량을 의미하는 ‘오너 드리븐(차주가 직접 운전하기 위해 제작된 차)’ 부문에서도 최고의 머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벤틀리가 이처럼 높은 가격을 자랑하는 이유는 생산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기 때문이다. 벤틀리는 영국 체셔주의 크루공장에서 장인들의 손을 통해 제작되며, 내부를 직접 키운 소가죽으로 처리해 최소 3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여기에 제작 전에 구매를 희망하는 예비 소유주는 차종과 추가옵션, 114가지 외관의 색깔, 21종의 실내 카페트, 다양한 디자인의 인테리어 등을 선택해야 한다. 결국 어떤 차량을 제작할 지에 엄청난 애정이 들여야 하고, 선택 후에도 상당한 시일을 기다려야만 나만의 애마를 만날 수 있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자동차 전문가들은 벤틀리를 빈티지카의 제왕으로 부르고 있다. 우아하면서도 웅장한 디자인과, 시대를 거스르는 클래식함이 벤틀리를 ‘제왕’으로 떠받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장인의 정성이 한땀한땀 녹아있는 영국 혈통의 수제 럭셔리카 벤틀리를 만나봤다. 


- 물방울 헤드라이트의 강렬한 유혹

대당 가격이 3억원에 이르는 만큼 벤틀리의 시승기회는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통상의 수입브랜드와는 달리, 단 하루 만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과시간이 시작된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였다. 짧은 시승기회가 주어진 만큼, 조금이라도 더 타보기 위해 바쁘게 차량을 인수받았다. 

벤틀리 측으로부터 인수받은 시승 모델은 최근 출시된 신형 컨티넨탈 GT. 스포츠쿠페 모델인 ‘뉴 컨티넨탈 GT’는 지난 2002년 이후 첫 출시 이후 8년 만에 나온 풀체인지 모델이다. 차종이 쿠페인 만큼 쭉 뻗은 도어라인이 웅장하고 묵직한 차체와 우아한 조화를 이룬다. 


컨티넨탈 GT의 전면부는 스포츠쿠페 답지 않게 중후함을 자랑한다. 벤틀리 고유의 라디에이터그릴이 수직으로 자리 잡아 묵직함이 강조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바로 양쪽으로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연상시키는 헤드라이트가 스타일을 살려준다. 물방울 헤드라이트의 묘미는 시동을 걸면 드러난다. 최근 자동차업계의 트렌드가 되고 있는 LED가 빛을 발하면서 흡사 다이아몬드를 박은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시선을 돌려 옆태를 살펴보면, 그야말로 섹시하다. 스포츠쿠페의 날렵함을 극대화한 C필러의 라인은 그야말로 글래머러스의 절정을 보여준다. 특히 리어타이어 뒤로 펼쳐진 라인은 컨티넨탈 GT가 달리기에 특화됐다는 것을 강조하듯 말근육처럼 확연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황홀한 라인에 취한 채 뒷모습을 보면 탄성이 터져 나온다. 스포츠쿠페답게 물 흐르듯 따라 처리된 라인이 안정감과 함께 세련미를 동시에 보여준다. 양쪽에 자리 잡은 벤틀리 특유의 더블타원 테일램프은 수제 럭셔리카의 자존심을 한껏 뽐낸다. 여기에 두툼한 듀얼 머플러가 금방이라도 불을 토해낼 기세로 번뜩인다. 

벤틀리 컨티넨탈 GT를 한바퀴 쭉 둘러보고 난 뒤 느껴지는 기분은 황홀감, 그 자체다. 한 CF에 등장했던 ‘차는 달릴 때보다 서 있을 때 더 멋져야 한다’는 카피처럼 그야말로 엄청난 존재감이 느껴진다. 



- 코브라시트의 치명적 매력

두툼한 두께를 자랑하는 컨티넨탈 GT의 도어를 열고 운전석에 앉으면, 그야말로 호화로움의 최고봉이 펼쳐진다. 착석과 동시에 리어윈도우에서 ‘지잉’ 소리를 내며 앞으로 튀어나오는 안전벨트를 살펴볼 여유도 없이 천연가죽으로 마무리된 인테리어를 둘러보기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벤틀리의 설명에 따르면 차량 한 대에는 통상 15마리 이상의 소 가죽이 사용된다. 특히 벤틀리는 직접 소를 방목하며 사육하는데, 울타리에 부딪힌 소의 경우 가죽이 상할 수 있기 때문에 인근에 목장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내부를 살펴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시트다. 소가죽으로 감싸진 시트는 코브라를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착석하면 버킷시트처럼 몸을 감싸준다. 

운전석에 앉아 스티어링휠을 살펴보면 영국 장인들이 한땀한땀 바느질한 가죽으로 마무리된 스티이렁휠이 우아한 자태로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 너머로 시원스레 자리한 계기판들이 한눈에 들어오며, 스티어링휠과 손가락 두 마디 정도로 공간을 두고 페달시프트가 자리하고 있다. 

원목이 사용된 우드그레인과 가죽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인테리어 중 센타페시아에는 공조장치 사이로 명품브랜드인 브라이틀링의 아날로그시계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아래로 LCD와 오디오 컨트롤시스템 등이 자리했으며, 선명한 ‘B’자 새겨진 철조망 느낌의 변속기가 우뚝 솟아있다. 

고개를 뒤로 돌려 뒷좌석을 살펴보자. 엄청난 덩치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앉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을 것 같아 보이는 리어시트가 눈에 띈다. 디자인은 앞좌석과 같은 코브라시트지만, 웬지 좁은 공간 때문에 효용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석을 만들었다는 점이 굉장한 배려처럼 느껴진다. 


- 맹수를 연상시키는 공격적인 배기음 

차에 앉아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스타트버튼을 살짝 길게 누르자 W형 12기통 6000cc 트윈터보 엔진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밀림 한가운데 만난 용맹한 사자의 울음소리를 연상시키는 듯 하다. 

주행에 나서자 rpm이 2000을 넘지 않은 상황에서 기어가 5단으로 순식간에 변속된다. 아니 아예 rpm게이지가 움직이는 않는 상황에서 기어만 올라간 듯 느껴진다. 벤틀리 관계자는 “575마력의 폭발적인 힘이 1700rpm의 저 영역에서 발휘되도록 제조됐다”며 “속도를 너무 올리지 마세요”라고 불안해한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고 고속주행에 나서자, 곧바로 100 km/h를 훌쩍 넘겨버린다. 실제 정지상태에서 100km까지 걸리는 4.6초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차량의 흔들림이나 외풍이 전혀 내부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높아진 속도만큼 커진 배기음이 질주본능을 더욱 드러내주는 듯 하다.

속도는 계속 올라가는데, 운전하기에는 더욱 편안해지는 것이 매력적이다. 제한속도를 훌쩍 넘겼는데도, 질주본능을 자극하는 배기음 만이 들릴 뿐, 핸들 조작 등 주행안전성은 더 높아지는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제한속도를 지키기가 너무 어려울 정도다. 

고속주행을 마무리하고 서울시내로 다시 들어오자 언제나처럼 꽉 막힌 도로가 펼쳐진다. 우람한 덩치 때문에 살포시 운전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자, 컨티넨탈 GT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사람들의 눈길이 느껴진다. 사거리마다 신호등마다 차량이 정차하면 여지없이 눈빛 가득 부러움을 담은 채 한없이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차량을 반납하고 돌아오는 자꾸만 귓가에서 ‘크리릉~’ 거리는 컨티넨탈 GT의 울부짖음이 메아리친다. 단 9시간의 짧은 경험이었지만, 자꾸만 ‘조금 더 타고 싶다’라는 아쉬움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