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8월호에 게재됐습니다. ]
지난 7월5일 서울 청계천 인근의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 1층 주차장. 이곳에 아침부터 진풍경이 벌어졌다. 좀처럼 구경하기 어려웠던 슈퍼카들이 진열됐기 때문이다. 인근을 지나던 시민들은 ‘억’소리 나는 슈퍼카의 웅장한 배기음에 하나둘 걸음을 멈추고, 연신 카메라에 슈퍼카의 날렵한 모습을 담았다.
이날 모습을 드러낸 슈퍼카는 모두 5대로, 람보르기니 가야드로, 포르쉐 카레라S, 페라리 612 스카글라티, 벤츠 E350, 닷지 매그넘 등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2억원을 호가하는 차량들이다. 자동차업계 전문가는 “이날 공개된 5대 외에도 10억원대를 넘나드는 슈퍼카들도 예보의 경매 대기 목록에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일반인들로서는 구경조차 하기 힘든 슈퍼카들이 이처럼 예보 앞마당에 경매물건으로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또 중고자동차시장에서나 진행될법한 자동차경매를 예보가 진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억원의 몸값을 지냈지만,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경매 물건으로 몰락한 슈퍼카들의 비운의 일생을 살펴봤다.
- 수백억원대 불법대출의 담보?
예보에 따르면 이날 공개된 5대의 슈퍼카의 원주인은 도민저축은행의 회장이었던 채규철씨다. 정학하게는 채씨가 도민저축은행 회장으로 재직할 당시 수백억원대의 부실·불법대출을 해주는 과정에서 담보로 맡았던 물건이라는 설명이다.
지난해 도민저축은행 영업정지 당시 예보는 경기도 하남에 있던 저축은행 소유의 지하 창고에서 100억원대 규모로 추정되는 고가의 외제차 19대를 압류했다. 이중 압류절차가 마무리된 5대가 공개된 슈퍼카라는 설명이다.
예보에 따르면 지난해 영업 정지된 도민저축은행은 여러 가지 부실 원인이 있었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수입차에 대한 부실한 담보대출이었다. 채 회장은 4000만원 수준인 닷지 매그넘 차량에 2억7000만원을 대출해 주는 등 과도한 담보설정을 했다고 예보는 설명했다. 게다가 담보로 받은 차량들에 차량 소유권이나 권리이해 관계도 기록하지 않았고, 은행이 아닌 본인의 자택에서 관리하기도 했다.
주인을 잘못만나 불법 부실대출의 담보로 전락한 비운의 슈퍼카들의 가격은 얼마나 될까. 수입차업계에 따르면 람보르기니 가야드로의 경우 2006년식 배기량은 6469cc 모델로, 신차가격만 5억3870만원에 달한다. 페라리 612 스카글라티 역시 2005년식 배기량 5748cc에 신차가는 4억5000만원이다. 이외에 포르쉐 카레라S는 1억6000만원대에 달한다고 수입차 관계자는 밝혔다.
이처럼 억소리나는 수입차들을 예보가 경매에 붙이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불벌 부실대출로 막대한 손실을 입은 예금자들에게 돌려줄 손실금에 보탠다는 설명이다. 예보 관계자는 “매각 등록 절차가 끝난 외제차를 경매로 매각해 저축은행 예금자들의 손실금 보전에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 고가 수입차의 경우 법인 소유 많아
그렇다면 채 회장은 왜 슈퍼카를 담보로 받아 불법 대출에 나섰을까. 수입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처럼 수억원을 호가하는 럭셔리 슈퍼카의 경우 의외로 담보로 사용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밝혔다. 그는 “10억원대를 육박하는 슈퍼카의 경우 일반인들보다는 법인소유 차량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 경우 법인이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담보물건으로 등록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법인 물건을 담보로 받는 경우, 대출계약서를 작성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차와 차키만 받고 대출을 해준다”고 말했다.
제2금융권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자동차담보대출을 해준다는 설명이다. 차이가 있다면 정상적인 대출의 경우 차량에 담보설정을 하거나 계약서를 쓰지만, 슈퍼카들의 경우 법인 소유가 많기 때문에 이런 과정들을 생략하고 물건을 맡기고 돈을 받는 전당포식 방식을 택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금융권 관계자는 “법인 소유 차량을 담보로 맡기고 급전을 빌리는 경우, 차량의 담보설정을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며 “개인자산이 아닌 법인 재산을 맡기고, 돈을 빌린다는 것인데, 이 경우 횡령죄가 적용될 수 있어 대부분 차량과 키를 맡기고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고가의 슈퍼카를 담보로 맡길 정도로 급전이 필요한 상황은 대부분 사행성 게임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강원랜드 인근에서 대부업체를 운영했던 A시는 “외제차 대출은 대부분 강원랜드 등 사행성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많은 곳에서 많이 이뤄진다”며 “도박으로 급전이 필요한 이들이 수억원대 외제차를 맡긴 후, 급전을 받아 다시 사행성 게임에 몰두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담보 차량은 대포차로 활용되기도
이렇게 담보로 전락한 차량들은 대출기간 동안 창고에서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게 된다. 하지만 주인의 얼굴을 다시 보는 일은 굉장히 드문 일이라는 게 중고차업자들의 설명이다. 대출금을 갚고, 차를 찾아가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 중고차업자인 B씨는 “이미 자동차까지 담보로 잡고 사행성 게임에 빠진 이들이, 다시 돈을 갚아 담보물건을 찾는다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면서 “대출기한이 넘은 차량들은 불법 대포차업자들에게 다시 넘겨져 전국 각지나 해외로 팔려나간다”고 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포차는 캐리어카(자동차를 수송하는 트럭)를 통해 다시 서울로 들어온다. 경찰 관계자는 “불법 대부업자에게 담보로 맡겼던 차량들 중 일부는 대포차의 형태로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로 팔려나간다”며 “이런 차량들로 인해 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의 안전이 위협하는 범죄차량으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 도난차량이 전혀 엉뚱한 곳에서 발견된 경우도 있었다. 인기 탤런트 C씨는 2009년 당시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페라리 차량을 도난신고했는데, 해당 차량은 이번 예보의 저축은행 소유 창고 수색과정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원주인은 C씨인데, 문제의 차량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저축은행 창고에 보관되게 됐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대기업 최장 D씨 역시 과거 수십억원대 슈퍼스포츠카를 도난당했는데, 강남경찰서에서 대포차 업체를 잡는 과정에서 해당 차량이 등장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강남 일대에서 접대부들을 태우는 이른바 ‘콜떼기’ 차량에 쓰인다는 주장도 있다. 강남에서 중고수입차 업체를 운영 중인 B씨는 “술집에 다니는 아가씨들이 주로 애용하는 대형세단과 고가의 외제차는 대부분 대포차인 경우가 많다”며 “불법인 자가용 영업을 통해 대포차 구입비용을 충당하거나, 무리하게 사채를 끌어 수입차를 구매한 후 콜떼기로 차량가격을 입금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예보는 아직 경매 서류 절차가 끝나지 않은 슈퍼카들에 대한 등록 절차를 최대한 서두를 예정이다. 경기도 외곽의 한적한 창고에 묻혀 지냈던 슈퍼카들은 예보의 경매로 다시 빛을 볼 수 있을까.
'Driving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타일과 품격, 그리고 성능까지 완벽한 ‘쿠페’ (0) | 2012.11.21 |
---|---|
[Chrysler] 진짜 남자를 위한 300C 만의 세련된 중후함 (0) | 2012.11.21 |
[Mersedes-Benz] 신사의 품격을 완성하는 남자의 車 ML250 (0) | 2012.10.29 |
[Review] New SantaFe VS Rexton W, 절대강자는 누구? (0) | 2012.10.25 |
[KIA] 파워 넘치는 주행력 압권인 K9 타보니 (0) | 2012.10.24 |